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米山 許瀅

Huh Hyung

  • 사계산수 12폭병풍

四季山水 十二幅屛風

Twelve-Fold Folding Screen with The Four Seasons Landscape

지본채색
Ink and Color on Paper

120×33.5㎝

병풍

추정가

  • KRW  1,800,000 ~ 5,000,000
  • USD   1,360 ~ 3,760
  • JPY     196,000 ~ 544,000

낙찰가

KRW 1,800,000

작품 상세 설명

①依稀絶似江邨路 一片春船逆上溪
의희절사강촌로 일편춘선역상계

②西崦人家竹映溪 山深雨暗到來遲 서엄인가죽영계 산심우암도래지
서산 기슭 인가는 대나무 개울 위에 비치고, 비 내리는 산중 어두워 도착이 더디네.

③流水小橋邨路晚 隔林應有野人家 유수소교촌로만 격림응유야인가
흐르는 물 작은 다리 건너 마을길은 저문데, 숲 저쪽에는 마땅히 시골 사람들이 살고 있으리.

④令人却憶**頂 萬丈銀河下壁峰

⑤兩岸青山相對出 孤帆一片日邊來 양안청산상대출 고범일편일변래
양쪽의 푸른 산 사이로, 외로운 배 한 척이 해 뜨는 곳에서 온다.

⑥靑山影裏人家少 錄樓陰中石連涁 청산영리인가소 녹루음중석련삼
푸른 산 그림자 속엔 인가가 보이는구나

⑦米家山色渾無定 潑墨何人解脫胎 미가산색혼무정 발묵하인해탈태
미가의 산수화는 혼미하여 정해진바 없으니, 어느 누가 먹물 뿌려 환골탈태 시키리오?

⑧一*山光*碧螺 *中詩**如

⑨數家砧杵秋山下 一郡荆榛寒雨中 수가침저추산하 일군형진한우중
산 아래서 두서너 집에선 다듬이 소리 들리고, 우거진 가시덤불 속 온 고을 찬비 속에 보이네.

⑩西山紅葉僧歸寺 南國賣花獨掎樓 서산홍엽승귀사 남국매화독기루

⑪遠上寒山石徑斜 白雲深處有人家 원상한산석경사 백운심처유인가
멀리 가을 산을 오르니 돌길이 비껴 있고, 흰 구름 깊은 곳에 인가가 있구나.

⑫芭鞋踏破溪擖雪 掎樓梅花看竹豪 파혜답파계갈설 기루매화간죽호

작가 소개

본관은 양천(陽川), 본명은 결(潔), 전주 출신이다. 호남 남종화의 실질적 종조(宗祖)라 일컬어지는 소치(小癡)허련(許鍊)의 넷째 아들로 가업(家業)인 화가의 길을 걸었다. 진도, 강진, 목포에서 활동하였고 근현대 호남화단에서 중추적 역할을 한 아들 허건(許楗)과 족손 허백련(許百鍊)에게 그림을 가르쳤다.
‘호남화단의 종조(宗祖)’라 일컬어지는 소치(小癡)허련(許鍊)의 넷째 아들로 1862년에 전주에서 태어난 후 1867년 진도로 이주하여 성장하였다. 허련은 뛰어난 그림 재주를 가진 큰아들 허은(許溵)이 화업(畵業)을 이을 것으로 여겨 북송의 서화가 미불(米芾)의 성을 따서 미산(米山)이라 호를 지어 주는 등 기대하였으나 1867년 5월에 34세의 나이로 요절하자 낙담하여 다른 자식들에게 그림을 가르치지 않았다. 허형의 나이 16세 경 우연한 기회에 허형의 그림 재주를 알게 된 허련은 허형에게 본격적으로 그림을 가르쳐 가업을 잇게 하였고 미산이라는 호도 허형이 쓰게 하였기 때문에, 허은을 큰 미산(大米, 伯米), 허형을 작은 미산(小米, 季米)이라 부르기도 한다.
노년의 허련에게 간헐적으로 그림지도를 받은 허형은 그림으로 생계를 이어갔는데 그의 생애는 거주지의 이동에 따라 대략 3기로 구분된다. 즉 진도에 살다 1912년에 강진 병영(兵營)으로 이사하였다가 1921년에 목포로 다시 이사하여 생활하였다. 허형이 진도에서 강진 병영으로 이사한 것과 강진 병영에서 다시 목포로 이사한 것은 모두 생활난을 이겨내기 위한 시도로서 전남지방의 상업과 교역지의 이동에 따른 이사라 볼 수 있다. 허형은 1923년에 개최된 제2회 조선미술전람회 동양화부에 허준(許準)이라는 이름으로 「하경산수(夏景山水)」를 출품하여 입선하였고, 1928년 6월광주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허형은 80세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허련의 화법을 본받은 산수화·사군자·괴석 등을 수묵 또는 수묵담채로 그렸다.
허형의 작품세계는 진도에서의 활동시기를 전기로 강진 병영시기와 목포시기를 후기로 나누어 보기도 하지만 전후기의 구분은 뚜렷치 않으며 작품의 질적 차이가 크다. 허형의 회화사적인 면에서의 역할은 그의 작품이나 활동보다는 아들 남농(南農)허건(許楗), 허림(許林)과 족손(族孫) 의재(毅齋)허백련(許百鍊)에게 그림을 가르쳐 호남화단과 근현대 한국화단에 큰 족적을 남기게 해준 데에 있다고 보는 것이 적절할 것으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