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중인 경매

이전 페이지로 다음 페이지로
180

南寬

Nam Kwan

  • 무제

無題

Untitled

종이에 수채
Water Colors on Paper

33×42㎝

(1975)

우측 하단에 NAM 75

액자

추정가

  • KRW  1,500,000 ~ 4,500,000
  • USD   1,130 ~ 3,390
  • JPY     164,000 ~ 490,000

낙찰가

유찰

작가 소개

본관은 영양(英陽). 경상북도 청송 출생. 14세 때 일본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성장하였다. 1935년 동경의 다이헤이요미술학교(太平洋美術學校)를 졸업하고, 이어서 2년간의 연구 과정을 수료하였다.
수료 후에 광복 직후 귀국할 때까지 일본에서 활동하면서 작가로서의 기반을 닦았다. 이 시기 동경의 문부성미술전(文部省美術展)·동광회전(東光會展)·국화회전(國畵會展) 등에 출품하였던 작품은 서정적 색감과 표현적 자율성의 인물화와 풍경화였다.
귀국하여 서울에 정착해서는 1947년이쾌대(李快大)·이인성(李仁星)·이규상(李揆祥) 등과 조선미술문화협회를 결성하였다. 그리고 1949년까지 연례 회원 작품전을 가지며 두드러진 역량을 내보였다. 국내에서의 첫 개인전을 가지기도 하여 1949년 제1회 국전(國展)에서 일약 서양화부 추천 작가 위치에 올랐다.
그러던 중 1952년일본으로 다시 건너가 동경에서 보게 되었던 제1회 일본국제미술전[도쿄비엔날레]과 파리의 살롱 드 메 동경전은 그 뒤의 남관 예술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1954년의 프랑스행을 결행한 것은 그때의 충격적 자극 때문이었다. 그에 앞서 서울에서 개최된 도불 기념전 작품은 동경에서의 신선한 충격을 반영한 추상적인 화면이 과반수였다.
파리에 가서는 추상적 표현의 심상주의 형태를 심화시키면서 독특한 작업을 구현시켰다. 그 내면적 순수 형상은 6·25의 비극적 상황 체험에서 비롯된 정신적 표현 의지의 상징성과 시간·공간 및 역사의 어떤 표상을 내재시킨 것이었다. 그로 인하여 1958년부터는 파리의 살롱 드 메에 초대되었고, 1961년의 출품작 「동양의 풍경」은 프랑스 정부가 사들여 파리국립현대미술관에 들어갔다.
1962년 작품 「허물어진 제단(祭壇)」은 파리시가 구입하여 현재 시립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파리에서의 그러한 예술적 성공은 1966년남프랑스 망통회화비엔날레에서 「태양에 비친 허물어진 고적」으로 명제된 대작이 1등상에 오르면서 절정을 이루었다. 1968년에 귀국하여 홍익대학교 교수를 역임하였다. 국립현대미술관에 「역사의 흔적」(1963년)·「센 강변」(1968년), 삼성미술관에 「대화·절규」등이 소장되어 있다.
1974년 대한민국문화예술상(미술 부문)과 1981년문화훈장을 수상하였다. 1990년에는 대한민국예술원상이 추서되었다.
남관은 전후 전쟁의 체험을 자신의 예술관 속에서 응축시키고 순화시키는 각고의 노력을 거듭한 끝에 독특한 동양적 추상 화법을 이룬 작가로 평가 받는다. 그는 앵포르멜(Informel)의 영향 하에서 전쟁의 비극적인 경험을 오랜 시간의 여과를 통해 자기 양식으로 완성시켰다. 그는 후기 작품 세계에 들어서면서 전쟁, 시체의 얼굴, 고대의 유물 내지 전통적인 상형문자를 떠올리게 하는 암시적인 기호물을 등장시킨다. 또한 동양의 전통 색채인 쪽빛(푸른색)을 주로 사용하여 풍부한 감성과 깊이를 갖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해왔으며 오랜 시간의 경과와 마멸의 시각적 효과를 위해 얼룩이나 발묵(潑墨), 드리핑(Dripping), 데칼코마니(Décalcomanie)등의 혼합적 기법을 적극 활용하면서 화면 속에 시간의 경과와 각 재료들의 마모과정을 보여주기 위한 흔적들을 남겨 놓았다. 한국의 추상 미술에 있어서 그는 파리 화단의 앵포르멜 영향 하에서 서양의 유화 매체를 동양 전통의 정신세계로 융합했다는 데 그 의의가 있다. <흑과 백의 율동>(1981)은 서예적 추상의 형상적 이미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러한 추상적 기호는 옛 문명의 잔상이나 상형문자와 같은 기호적 느낌을 주며 회화적 요소를 순수한 조형적 모티브로 전환시키려는 시도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