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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주 원덕문 스님 月洲 元德文WonDeokMun Buddhist Monk

1913 ~ 1992

한국

단청·한국화

중요무형문화재 제48호 단청장(丹靑匠)

작가약력

  • 1913~1992. 승려이자 불교 미술가.

작가 소개

법호는 월주(月洲), 법명은 원덕문(元德文). 원덕문 스님은 1913년 12월 1일 부산광역시 중구 영주동에서 태어났다. ‘속세에 살면 단명한다.’는 말에 따라 부산공립보통학교[현 봉래초등학교]를 수료한 직후인 1925년 13세의 나이에 부모에 의해 범어사 암자인 복천암(福泉庵)으로 출가하였다. 당시 복천암은 불모(佛母)인 승려 1800년대 후반부터 1931년까지 서울·경기 및 경상도 지역에서 활동했던 완호당 낙현 스님(玩虎堂 洛現, 1869-1933)이 주석하고 있었다. 1928년에 범어사 불화소에 입소한 원덕문 스님은 낙현 스님의 제자가 되어 시왕초(十王草), 사천왕초(四天王草), 보살초(菩薩草) 등을 익히며 단청과 불상 조각을 연마하였다. 그러나 16세에서 19세까지 4년 정도 수학 중에 낙현 스님이 입적하자 범어사 불화소로 들어오던 불화 제작을 스승 대신 맡아서 조성하면서 본격적인 화사(畵師) 생활을 시작하였다.
1934년~1939년에 원덕문 스님은 이후 범어사 불교전문강원 사교과에서 공부를 하였고, 다시 범어사 불교전문강원 대교과에서 수학하여 불교의 교리와 경전 공부도 하였다. 1940년 오사카시립미술학교에 입학하여 일본의 청룡사전(靑龍社展)에서 입상한 후, 1942년 귀국하였다. 1945년 녹원성화림(鹿苑聖畵林)을 창립하고, 1946년 불교청년회 경상남도본부장으로 취임하는 등 사회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원덕문 스님은 만년에는 서울 돈암동 흥천사(신흥사)에 거주하며 월주고전미술전수원을 개원해 많은 불교미술작가를 양성하기도 했다. 1972년 8월 1일 국가무형문화재 제48호로 지정되었으며 그 해에 단청문양보존연구회를 설립하여 단청 및 전통미술의 전승과 보급에 힘썼다. 1980년부터 불교 미술 전람회 심사 위원을 역임하였다. 작품 활동도 왕성하게 하여 경주 불국사의 천수관음상 외에 많은 불화와 불상을 조성하였다. 1992년 세납 79세로 흥천사에서 입적했다.
초대 단청장 보유자였던 월주 원덕문 스님은 제자들에게 늘 ‘일척필도(一尺筆道) 천리행보(千里行 步)’를 강조했다. ‘먹선 한 척 긋는 힘이 천 리 길을 걷는 것 과 맞먹는다’라는 의미로 한 척의 선을 긋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과 정성을 들여야 하는지 일깨워 주는 의미로 항상 마음에 새기는 문구이다.
출처/성북문화원, 법보신문,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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