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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인 송지영 雨人 宋志英Song JiYeong

1916 ~ 1989

한국

작가약력

  • 1916∼1989. 소설가·언론인.

작가 소개

호는 우인(雨人). 평안북도 박천 출생. 12세 때 가족과 함께 경상북도 풍기로 옮겨 살았다. 1935년≪동아일보≫에 <화전민들과 같이>라는 생활기록을 14회 연재하였다.
이어 1936년 ≪신동아≫와 ≪신가정≫에 수필 또는 기행문을 발표하였으며, 1937년 동아일보사에 입사하여 이듬해 만주특파원이 되었다가 1940년 중국 상해시보(上海時報) 기자가 되었다.
중국 난징(南京)중양대학(中央大學) 재학중이던 1943년 일본경찰에 구속되어 학교를 3년 만에 중퇴하였고, 1944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2년 선고를 받고 나가사키(長崎) 형무소로 이감되었다가 8·15광복 후 출소하였다.
1946년 한성일보 편집부장이 되었는데, 그 당시 ≪한성일보≫는 안재홍(安在鴻)이 사장이었고, ≪동아일보≫와 함께 대표적인 우익신문으로 반탁(反託)에 앞장섰다.
이 무렵부터 소설가로서 작품활동을 병행하였으며, ≪백민≫에 <젊은날의 노래>를 발표하였다.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 중앙위원을 역임하였으며, 1948년 8월 당시 중앙 5대신문의 하나였던 국제신문 주필을 맡았다가 이듬해 3월 이 신문이 필화로 폐간되자 태양신문 주필 겸 편집국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1950년 피난수도 부산에서 발행되던 국제신문 논설위원을 지냈고, 1956년 희망사 주간으로 있었다. 1959년 4월부터는 조선일보 논설위원, 9월부터는 편집국장이 되어 곧이어 일어난 4·19혁명을 겪었다.
1961년한국전통사(韓國電通社)의 사장에 취임하였는데, 그 해 2월 13일에 창간된 ≪민족일보≫ 와 관련을 맺었다 하여 5·16군사정변 직후에 구속되어 1961년 8월 혁명재판소에서 민족일보 사장 조용수(趙鏞壽)를 비롯, 안신규(安新圭)와 함께 사형선고를 받았다. 조용수는 그 해 12월 사형이 집행되었으나 송지영과 안신규는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
그의 감형을 위해서 문단과 언론계 인사 104명이 관대한 처분을 호소하는 진정서를 재판부에 제출하였고, 일본에서도 평론가·작가·문인 등이 ‘3명의 한국언론인 구출동지회’를 결성하여 서명운동을 벌였다.
1969년 7월 8일에 출소하여 1972년 2월부터 조선일보 논설위원이 되었다. 1979년 문예진흥원장에 취임하였다가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전국구, 민정당)을 역임한 뒤, 1984년 한국방송공사 이사장을 맡았다.
저서로는 소설집 ≪청등야화 靑燈夜話≫·≪천풍≫ 등이 있고, 1972년 전 7권의 ≪송지영대표작전집≫을 출간하였다. ≪우수의 일월≫은 민족일보사건으로 옥중에 있을 때의 경험을 쓴 책이다.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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