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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사 송병준 蓮史 宋秉畯 Song ByeongJun

1858 ~ 1925

조선·근대

작가약력

  • 1858(철종 9)∼1925. 무관·고위관료·정치가·기업가.

작가 소개

1858년 8월 20일 함경도 장진에서 출생했다. 본관은 은진(恩津), 호는 연사(蓮史), 도호는 제암(濟庵)이다. 아버지는 율학훈도 송문수(宋文洙)이다. 조선 말기에 사헌부 감찰, 중추부 도사, 흥해군수 등을 지냈으며, 대한제국기에는 농상공부대신, 내부대신, 일진회 총재 등을 역임하였는데, ‘정미칠적’으로 지탄을 받았다. 일제강점기에 백작 작위를 받았으며, 중추원 고문과 『조선일보』·조선농업㈜·고려요업㈜ 사장 등을 지냈다.
1882년(고종 19) 임오군란(壬午軍亂) 때는 간신히 피신하였고, 본시 수구파(守舊派)에 속했으므로 1884년 갑신정변(甲申政變)을 일으킨 김옥균(金玉均)을 살해하려고 일본에 건너갔으나 도리어 설득당하여 그의 동지가 되었다. 1886년 귀국하여서는 김옥균과 통모한 혐의로 투옥되었으나 민영환의 주선으로 출옥, 흥해군수(興海郡守)·양지현감(陽智縣監) 등을 역임하다가 정부가 체포령을 내리자 다시 일본으로 피신했다.
노다헤이지로[野田平治郞]라는 이름으로 개명, 야마구치현[山口縣] 하기[萩]에서 잠업(蠶業)에 종사하다가 1904년(광무 8) 러일전쟁이 일어나자 일본군의 통역으로 귀국하였다. 이때부터 완전히 친일파로 돌아서고 일본의 주구(走狗) 노릇을 하기 시작했는데, 귀국 즉시 윤시병(尹始炳)과 함께 유신회(維新會)를 조직하고 다시 이용구(李容九)와 함께 일진회(一進會)를 만들어 나라를 일본에 넘겨 주기 위한 전초작업을 시작하였다.
헤이그 특사사건 후에는 황제 양위운동(皇帝讓位運動)을 벌여 친일활동에 앞장섰고, 1907년 이완용(李完用) 내각이 들어서자 농상공부대신(農商工部大臣) ·내부대신을 역임, 국권피탈을 위한 상주문(上奏文) ·청원서를 제출하는 매국행위를 했다. 그 후 다시 일본에 건너가 국권피탈을 위한 매국외교를 하여 전국민의 지탄을 받았다. 국권피탈 후 일본정부로부터 자작(子爵)을 수여받았고 조선총독부중추원고문(朝鮮總督府中樞院顧問)이 되었으며 1920년 다시 백작(伯爵)에 올랐다.
1925년 2월 1일 사망하였는데, 일본 천황이 포도주 12병을 내려 애도했고 조선총독 사이토 마코토[齋藤實]가 조문했다. 남산정에서 장례식이 치러질 때 도쿄 야스쿠니신사[靖國神社]에서도 추도식이 성대하게 거행되었다. 사후 욱일동화대수장(旭日桐花大綬章)이 추서되었다.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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