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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상기 孫詳基Son SangKi
1949 ~ 1988
한국
서양화
작가약력
- 학력 사항
- 원광대학교 회화과
- 전시 이력
- 개인전
- 2001, 유작전, 예술의전당
- 1998, 유작전, 샘터 화랑
- 1989, 유작전, 갤러리 현대
- 1989, 유작전, 샘터 화랑
- 1986, 개인전, 샘터 화랑, 바탕골 미술관, 평 화랑
- 1986, 개인전, 대구 이목 화랑
- 1985, 개인전, 샘터 화랑
- 1984, 개인전, 샘터 화랑
- 1983, 개인전, 여수 한길 화랑
- 1983, 개인전, 동덕 미술관
- 1981, 개인전, 출판 문화회관
- 1981, 개인전, 동덕 미술관
- 단체전
- 2004, 낙타, 사막을 건너다- 16주기 기념전, 예술의전당
- 1994, 요절작가 오윤 손상기전, 샘터 화랑
- 1990, 누드와 인간전, 샘터 화랑
- 1987, 화랑미술제, 샘터 화랑, 호암 갤러리
- 1986, 정예작가 초대전, 동덕 미술관
- 1986, 형상의 흐름전, 경인 미술관
- 1986, 비평구상협회 초대전, 파리 그랑팔레
- 1985, 평 화랑 개관 기념전, 평 화랑
- 1984, 문제작가전, 서울 미술관
- 1984, 미술협회전, 국립현대미술관
- 1984, 작업실의 작가 16인 초대전, 조선 화랑
- 1981, 한국 현대미술 대상전, 디자인 포장센터
- 1977, 한국 창작미술협회 공모전, 국립현대미술관
- 현대화랑초대 구상회원전, L.A
- 수상 내역
- 1982, 한국미술대전 입선
- 1982, 구상전 공모전 특선
- 1981, 중앙 미술대전 입선
- 1981, 한국현대미술대상전 동상
- 1976~1977, 한국 창작미술협회 공모전 입선 2회
- 1976, 전국 대학생 예술축전 동상
- 1976~1977, 전북 미술전람회 특선 2회
- 1976, 구상회 공모전 은상
- 1976~1981, 구상회 공모전 입선 3회
- 1975, 구상회 공모전 동상
- 1973~1974, 전북 미술전람회 입선 2회
- 1972, 제10회 홍익대 전국 학생미전 특선
- 1971, 제8회 세계학생미술전 유화 특선
- 1971, 제16회 호남 예술제 입선
- 1970, 제15회 호남 예술제 우수상
작가 소개
1949년 전라남도 여수에서 태어났으며, 원광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했다. 초등학교 때 척추를 다쳐 성장이 멈추는 불구가 되어 ‘꼽추화가’로 불린다. 1981년 첫 개인전을 가진 이래 중앙미전, 구상전 등에서 수상하였고, 〈문제작가전〉 〈해방40년 민족사전〉 〈30대 기수전〉 등에 참여하였다.
초기에는 ‘자라지 않는 나무’, ‘시들지 않는 꽃’ 등 자연적 이미지를 통해 자전적인 이야기를 직설적 또는 역설적으로 표현하였으나, 《공작도시》 연작에 이르러서는 사회와 역사 문제로 작품세계를 확산시켰다. 손상기가 가지고 있던 도시에 대한 인상은 지극히 개인적인 심리에서 출발한다. 작가는 성인이 되어 서울, 아현동에서 살기 시작하면서 1980년대 제작한 <공작도시> 연작에 구체적인 내용을 담기 시작한다. 이러한 점에서 <공작도시>는 작가의 삶의 편린이자 현실의 반영인 것이다. <자라지 않는 나무>(1985)는 굵은 나무기둥과 그 옆에 잘려진 나무를 통하여 자신의 모습을 투영시키고 있다. ‘자라지 않는 나무’는 작가의 삶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매개체임과 동시에 자신의 불운한 처지를 나름대로 치유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또한 ‘자라지 않는 나무’란 자라지 않는 작가 자신의 키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며, 회색의 칙칙하면서도 우울한 색조로 이루어진 음산한 도시 변두리의 나목(裸木)이나 가지 잘린 가로수 등은 비록 쓸쓸하게 고통을 감내하고 있지만 여전히 살아있는 생물체로서 존재한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자라지 않는 나무는 종말론적인 시각이 아닌 새로운 희망을 담은 존재인 것이다. 손상기는 1980년대 초반부터 ‘공작도시’라는 주제로 작업을 시작하였다. 공작도시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은 인위적이며 기계적인 공간 속에 경직되어 있는 인간 군상을 떠올리게 된다. 도시 주변부 삶의 모습에 초점을 맞춘 그의 비판적인 시각은 문명과 인간의 충돌에서 비롯된 심리적인 괴리감을 표현하고 있다. 작가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하여 사회의 어두운 현실 속에 처한 인간의 모습을 표현하려 한다. 이러한 현실참여적인 성격은 1980년《현실과 발언전》에서부터 시작되었는데, 당시 새로운 경향의 구상회화를 추구하던 작가들과 손상기는 교우하면서 삶에 대한 성찰은 더욱 진지하게 변화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1985년 민족미술협회 가입 이후 더욱 짙게 나타나게 되며 작품의 주제 역시 주변생활에서 비롯하여 삶의 본질, 역사 등의 주제들로 확대되었다. 1983년 샘터화랑과 인연을 맺은 이후 매년 샘터화랑에서 개인전을 가지며 후원을 받았다. 1988년 지병이 악화되어 39세의 나이로 요절하였다.
1998년 샘터화랑에서 〈10주기 유작전〉이 열렸고 작가가 생전 자신의 삶과 작품 세계에 대해 기록한 글과 전시작품을 담은 화문집 《자라지 않는 나무》가 출간되었다. 주요 작품으로 《공작도시 - 손수레 끄는 사람》(1983), 《영원한 퇴원》(1985) 등이 있다.
초기에는 ‘자라지 않는 나무’, ‘시들지 않는 꽃’ 등 자연적 이미지를 통해 자전적인 이야기를 직설적 또는 역설적으로 표현하였으나, 《공작도시》 연작에 이르러서는 사회와 역사 문제로 작품세계를 확산시켰다. 손상기가 가지고 있던 도시에 대한 인상은 지극히 개인적인 심리에서 출발한다. 작가는 성인이 되어 서울, 아현동에서 살기 시작하면서 1980년대 제작한 <공작도시> 연작에 구체적인 내용을 담기 시작한다. 이러한 점에서 <공작도시>는 작가의 삶의 편린이자 현실의 반영인 것이다. <자라지 않는 나무>(1985)는 굵은 나무기둥과 그 옆에 잘려진 나무를 통하여 자신의 모습을 투영시키고 있다. ‘자라지 않는 나무’는 작가의 삶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매개체임과 동시에 자신의 불운한 처지를 나름대로 치유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또한 ‘자라지 않는 나무’란 자라지 않는 작가 자신의 키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며, 회색의 칙칙하면서도 우울한 색조로 이루어진 음산한 도시 변두리의 나목(裸木)이나 가지 잘린 가로수 등은 비록 쓸쓸하게 고통을 감내하고 있지만 여전히 살아있는 생물체로서 존재한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자라지 않는 나무는 종말론적인 시각이 아닌 새로운 희망을 담은 존재인 것이다. 손상기는 1980년대 초반부터 ‘공작도시’라는 주제로 작업을 시작하였다. 공작도시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은 인위적이며 기계적인 공간 속에 경직되어 있는 인간 군상을 떠올리게 된다. 도시 주변부 삶의 모습에 초점을 맞춘 그의 비판적인 시각은 문명과 인간의 충돌에서 비롯된 심리적인 괴리감을 표현하고 있다. 작가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하여 사회의 어두운 현실 속에 처한 인간의 모습을 표현하려 한다. 이러한 현실참여적인 성격은 1980년《현실과 발언전》에서부터 시작되었는데, 당시 새로운 경향의 구상회화를 추구하던 작가들과 손상기는 교우하면서 삶에 대한 성찰은 더욱 진지하게 변화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1985년 민족미술협회 가입 이후 더욱 짙게 나타나게 되며 작품의 주제 역시 주변생활에서 비롯하여 삶의 본질, 역사 등의 주제들로 확대되었다. 1983년 샘터화랑과 인연을 맺은 이후 매년 샘터화랑에서 개인전을 가지며 후원을 받았다. 1988년 지병이 악화되어 39세의 나이로 요절하였다.
1998년 샘터화랑에서 〈10주기 유작전〉이 열렸고 작가가 생전 자신의 삶과 작품 세계에 대해 기록한 글과 전시작품을 담은 화문집 《자라지 않는 나무》가 출간되었다. 주요 작품으로 《공작도시 - 손수레 끄는 사람》(1983), 《영원한 퇴원》(1985) 등이 있다.
출처/월간미술, 두산백과, 국립현대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