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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당 서정주 未堂 徐廷柱Seo JungJoo

1915 ~ 2000

근대·현대

시인·한국화

작가약력

  • 1915~2000. 시인.

작가 소개

1915년 전라북도 고창에서 출생했다. 1925년 줄포보통학교를 수료하고, 1929년 중앙고등보통학교 입학, 1930년 광주학생운동과 관련해 구속되었다가 기소유예로 석방, 이로 인해 퇴학당했다. 1931년 고창고등보통학교에 편입했으나 곧 자퇴, 방랑을 하다가 고승 박한영 문하에 입산했다. 서울 대한불교전문강원에 입학해 중앙불교전문학교에서 수업했다.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벽」(壁)이 당선되었고, 같은 해에 김광균, 오장환과 함께 동인지 『시인부락(詩人部落)』을 창간하고 주간을 지냈다. 1940년~1941년 2월까지 만주 간도에서 양곡주식회사 경리사원으로 있었고 용정에서도 체류했다. 1941년 첫 시집 『화사집』을 출간했다. 1941년 동대문 여학교에서 교편을 잡은 후 동아대학교·조선대학교 등에서 강의했으며, 1960년 이후 동국대학교 교수로 재직했다.
1942년부터 1944년까지 친일문학을 발표했는데, 주로 시·소설·잡문·평론 등을 통해 일제에 협력했다. 『매일신보』(1942)에 다츠시로 시즈오(達城靜雄)라는 창씨개명한 이름으로 「시의 시야기-주로 국민시가에 대하여」를 발표, 친일문학지 『국민문학』, 『국민시가』의 편집에 참여하면서 수필 「징병 적령기의 아들을 둔 조선의 어머니에게」(1943), 「인보(隣保)의 정신」(1943), 「스무 살 된 벗에게」(1943), 일본어 시 「항공일에」(1943), 단편소설 『최제부의 군속 지망』(1943), 시 「헌시(獻詩)」(1943), 「오장 마쓰이 송가」(1944) 등 11편을 발표했다. 대부분의 내용은 태평양전쟁을 성전(聖戰)으로 미화하면서 학병지원 권유, 징병의 필요성과 의미를 의도적으로 드러내는 일제의 식민정책에 동조해야 한다는 입장을 주장하는 글을 썼다. 서정주의 친일작품은 특히 1943년에 많이 발표되는데, 그 배경에는 같은 해에 최재서와 함께 일본군 종군기자로 사병의 군복을 입고 취재를 다녔다.
해방 후에는 좌익측의 조선문학가동맹에 대응하여 우익측이 결성한 조선청년문학가협회의 시분과 위원장으로 활동했으며, 동아일보사 문화부장, 문교부 초대 예술과장을 역임했다. 1949년 한국문학가협회 창립과 함께 시분과 위원장을 지냈고, 1950년 6·25전쟁 때는 문총구국대가 급조되어 실무책임을 맡았다. 미당은 구상과 함께 일선부대에 나가 신문편집, 시낭송, 연설 등을 했다. 1950년 한국전쟁 때 한강 도강에 성공하여 조지훈, 이한직 등과 함께 피난을 갔으나 전쟁의 상흔으로 조현증(調絃症, 정신분열증)이 나타나 병원에 요양했다. 정신병 증세는 그의 시세계를 새롭게 확장하는 요소로 작용했다. 1954년 대한민국예술원 종신회원에 추천되었고, 1977년 한국문인협회 이사장을 역임했다.
1941년에 발간한 첫시집 『화사집』은 생명탐구에 집중되어 관능적, 본능적인 이미지가 주류를 이루고 있어 초기의 치열한 정신적 방황을 잘 담아내고 있다. 이는 본능과 도덕과의 갈등, 혹은 내면적 자아와 현실적 자아 사이의 끊임없는 물음과 충돌에서 비롯된 것으로 평가받는다. 1948년 『귀촉도』는 일제말기에 쓴 시와 해방 뒤에 쓴 시를 함께 수록하고 있어서 『화사집』과 유사한 작품도 있고 이조백자나 노자, 장자 등 동양사상을 중요한 세계관으로 수용한 변화를 잘 담아내고 있다. 『서정주 시선』이 발간된 1955년은 미당이 불혹의 나이를 넘긴 직후로 해방과 한국전쟁의 격동기를 보낸 시기여서 시세계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또한 이 시집은 「국화옆에서」, 「무등을 보며」, 「추천사」, 「광화문」, 「상리과원」 등 대표작들이 수록되어 있다. 1960년 『신라초』는 미당의 인생관 정립을 위한 신라정신이 시적 주제로 등장하는데 『삼국유사』, 『삼국사기』의 고전을 통해 문학적 성취를 시도하였다. 그 외 『삼국사절요』, 『신라수이전』(최남선 편집)까지 섭렵했다. 그러나 『신라초』는 사료(史料) 차용에 그쳤다는 인상을 준다면 1968년 『동천』에 와서 시적 형상화를 이루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신라정신을 바탕으로 하는 영원주의 추구가 이 시집의 성취라고 할 수 있다.
1975년 『질마재 신화』는 고향 질마재에서 전해오는 설화를 소재로 했다. 이야기체를 그대로 수용하여 산문시 형식을 이루고 있으며, 이 시집은 미당이 회갑에 이른 때로 고향에 대한 회귀의식이 시적 구성으로 드러난 작품이다. 1970년대 새마을운동과는 달리 고향의 전통과 서정을 잘 갈무리하면서 옛마을 문화의 소중함을 간직한 시집이다. 1976년 『떠돌이의 시』 이후의 작품은 그 전 작품만큼 정제되어 있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신라정신의 연장선에서 신라는 물론 고려, 조선시대의 인물과 사건을 시적 내면으로 구체화 시켰고, 외국여행을 체험한 느낌도 포함시켰다. 1980년 『서으로 가는 달처럼』, 1982년 『울고 간 날들의 시』, 1983년 『안 잊히는 일들』, 1984년 『노래』, 1988년 『팔할이 바람』, 1991년 『산시(山詩)』, 1993년 『늙은 떠돌이의 시』 등을 출간했다. 2000년 12월 24일 사망했다.
1962년 ‘5·16 문예상’ 본상과 1966년 대한민국예술원상을 수상했으며, 1980년에는 중앙일보가 주관하는 문화대상 본상을 수상했다. 정부에서는 2000년에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으며, 중앙일보사는 2001년에 미당문학상을 제정했다.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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