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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선 金在善Kim JaeSeon

1885 ~ ?

근대·일제강점기

작가약력

  • 1885(고종 22)~?. 경기도 성남 지역에서 활동한 개항기 의병.

작가 소개

김재선은 대한제국 시위대(侍衛隊)에서 퇴역한 군인으로 성남 출신의 남상목(南相穆)이 일으킨 의병 부대에 좌익장으로 참여하였다.
1905년(고종 42) 11월 을사늑약(乙巳勒約)에 의해 대한제국은 일본한테 외교권을 박탈당하였다. 이어 1907년(순종 1) 7월 정미칠조약(丁未七條約)으로 군대까지 해산당하고 내정간섭까지 받게 되자 우리 민족은 의병을 일으켜 항전에 나섰으며, 특히 군대 해산으로 군인들이 대거 의병 부대에 합류하면서 항일 전쟁의 규모는 확대되었다. 이때 성남 지역에서는 남상목이 의병을 일으켰다. 남상목은 경기도 광주군 낙생면[현 성남시 분당구 운중동]에서 출생하였으며, 의병을 일으키기 전에 판교 지역에서 일본인들이 벌목을 하면서 판교 주민들에게 임금도 제대로 주지 않고 노동력만 착취한 것에 분개하여 항의하다가 파출소에 잡혀가 고초를 겪기도 하였다.
김재선은 대한제국 시위대 출신으로서 1907년 8월 1일 일제에 의해 군대가 강제 해산되자 남상목이 일으킨 의병 부대에 투신하였다. 김태동(金泰東)·송주상(宋柱祥)·김경화(金景化)·이시영(李時永) 등 동지들과 함께 남상목 의병 부대에 참여한 김재선은 좌익장으로 선임되었다. 김재선이 시위대에서 쌓은 군사 지식이 남상목 의병 부대에게는 큰 힘이 되었을 것이다.
남상목 의병 부대는 충청북도 음성(陰城)에서 일본군 수비대와 교전하였으며, 경기도 죽산(竹山)에서 활동하고 있던 전봉규(全奉奎)·민병찬(閔丙贊)의 의병 부대와 연합하여 안성(安城)의 일본군 수비대와 접전하였다. 이 전투에서 크게 승리한 연합 의병대는 많은 무기를 노획하였으나 전봉규 의병 부대는 노획물뿐 아니라 남상목 의병 부대의 무기까지 빼앗아 갔다. 일본군과 전투를 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서 무기 보급이 매우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김재선은 무장을 준비하여 재차 거의할 작정으로 상경하였다가 1908년 3월 붙잡혀 유형(流刑) 10년의 고초를 겪었다. 남상목은 해외로 망명하여 투쟁하고자 부모님께 하직 인사를 드리러 가던 중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하였다. 김재선 등 의병 동지들의 활동은 남상목의 순국 사실을 전국 의병 부대에 알린 「남상목 순국 통고문」을 통하여 알려졌다.
1995년 대한민국 정부에서 김재선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출처/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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