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검색

작품이미지

학암 장화식 學巖 張華植Jang HwaSik

1853 ~ 1938

조선·근대

작가약력

  • 1853(철종 4)∼1938. 조선 말기의 문신.

작가 소개

자는 병숙(丙淑)이고, 호는 학암(鶴巖) 또는 연파만(蓮坡晩)이다. 본관은 인동(仁同[2]), 출신지는 원곡리(原谷里)이다.
증조부는 증좌승지(贈左承旨) 장대붕(張大鵬), 조부는 증호조참판(贈戶曹參判) 장양한(張亮翰)이며, 부친은 생원 장영제(張永濟)이다. 외조부는 창원황씨(昌原黃氏) 황지태(黃志泰)이며, 처부는 김해김씨(金海金氏) 김재유(金在裕)이다.
그는 타고난 성품이 총명하고 영특하여 듣는 것은 모두 암기하였다. 7세 때에 공부를 시작하였으며, 8세 때에 모친상을 당하였을 때 그는 어른과 함께 삼년상을 치렀다. 11세 때에 통사(通史)를 읽기 시작하면서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은 그는 17세가 되었을 때 이미 경사(經史)에 통달하였으며, 20세 때에 서악사(西嶽寺)에서 『주역(周易)』 공부를 하였다.
1874년(고종 11) 부친상을 당하여 장례를 치루었다.
1887년(고종 24)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에 제수(除授)되었고, 후에 이임되어 아문주사(衙門主事)가 되었다. 1891년(고종 28)에는 승륙(陞六: 정7품 이하의 참하관에서 참상관으로 오르는 것) 되어 의릉령(懿陵令)이 되었으며 얼마 안 있어 태인현감(泰仁縣監)의 임용 후보자로 올랐다. 1892년(고종 29) 봉화현감(奉化縣監)에 제수(除授)되어 현에 도착하자마자 태백산사고(太白山四庫)를 수집(修戢)하였다. 이후 영덕현령(盈德縣令)에 제수(除授)되었으며, 1903년(광무 7) 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 1905년(광무 9) 군부경리국(軍部經理局) 2과장이 되었다.
묘소는 군(郡)의 서쪽 봉덕산(鳳德山) 서악사(西嶽寺) 후운평(後雲坪)에 있다.
그의 문집으로 『학암선생문집(鶴巖先生文集)』이 전한다.
출처/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

작가의 경매 작품

제47회 I Contact 온라인경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