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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와 전병순 謙窩 田秉淳Jeon ByeongSun

1816 ~ 1890

조선

작가약력

  • 1816(순조 16)~1890(고종 27). 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의 성리학자.

작가 소개

전병순(田秉淳)의 자는 이숙(彛叔), 호는 부계(扶溪)·겸와(謙窩), 본관은 담양(潭陽)이다. 1816년(순조 16) 4월 27일 경상남도 함양군 서상면 금당리 추천(楸川)마을[지금의 금당리 추상마을과 추하마을 일대]에서 태어났다. 증조할아버지는 전동인(田東仁), 할아버지는 전시룡(田始龍)이다. 할아버지는 효행으로 감찰에 추증되었다. 아버지는 전석채(田錫采), 어머니는 밀양박씨이다.
전병순은 아버지 전석채의 명으로 동생 전시순(田蓍淳)[1823~1881]과 함께 매산(梅山) 홍직필(洪直弼)[1776~1852]에게 10여 년 동안 학문을 배웠다. 홍직필의 문인으로 조병덕(趙秉德)·전우(田愚)[1841~1922] 등과 교유하였다. 스승 홍직필이 관직에 나아갈 것을 권하였으나 전병순은 끝내 나가지 않았다.
홍직필이 사망하자 기년복(朞年服)[일 년 동안 입는 상복]을 입었으며, 스승의 유고를 수합하여 『매산집(梅山集)』의 찬술(纂述)에 전력하였다. 1869년(고종 6) 덕유산(德裕山)[1,614m] 자락인 경상남도 함양군 서상면에 자그마한 정사를 짓고 학문에 힘썼다. 정사는 자신의 호를 따서 부계정사(扶溪精舍)라 하였다. 부계정사는 지금도 남아 있다. 서양의 학문이 조선으로 급속하게 유입하자 유학 진흥을 위해 노력하였다.
전병순은 정자(程子)[중국 송나라의 정명도(程明道)와 정이천(程伊川) 형제를 높여서 이르는 칭호]의 학설을 주로 하여 이기론(理氣論)을 주장하였다. 당시 성리학자들 사이에서 크게 논쟁이 된 명덕(明德)[사람의 마음에 있는 맑은 본성)·주기(主氣)[우주의 근원 존재가 물질인 기(氣)에 있다고 보는 입장]·주리(主理)[기(氣)의 활동 근본이자 기를 주재 및 통제하는 실재가 이(理)라고 보는 입장] 논쟁에 영향을 받아 명덕·주리·주기 논쟁에 대한 견해를 피력하였다. 스승 홍직필의 문집 『매산집』 출간에 관여하였다. 1913년 손자 전범진(田凡鎭) 등이 전병순의 유고를 모아 전병순의 문집 『부계집』을 출간하였다.
경상남도 함양군 서상면 중남리 복동[지금의 중남리 복골마을]에 장례를 지냈으나 1909년 경상남도 함양군 서상면 금당리 추천마을[지금의 서상면 금당리 추상마을과 추하마을 일대]로 이장하였다.
출처/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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