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소개
본관은 여산(礪山), 속명은 도암(道巖), 법명은 월면(月面), 법호는 만공(滿空)이다. 1871년(고종 8) 태인 군내면 상일리(현 정읍시 태인면 태흥리)에서 출생하였으며, 13세에 출가하였다.
충남 서산 천장사에서 태허(泰虛)를 은사로 모시고, 경허(鏡虛, 성우 1849~1912)를 계사(戒師)로 하여 사미계를 받았다. 1895년 온양 봉곡사에서 수행한 후 덕숭산 수덕사와 정혜사·견성암을 거쳐 금강산 유점사(揄占寺)에서 3년을 지냈다. 1905년 덕숭산으로 다시 돌아와 참선하며 수행승들을 가르치고, 1914년 서산 간월도리에 간월암이라는 암자를 세웠다.
1937년 마곡사(麻谷寺) 주지를 지낼 때 조선총독부 회의실에서 조선 31본산(本山) 주지회의가 열렸는데 총독부가 조선불교의 일본불교화를 주장하자 이에 호통을 치며 공박하였다. 주로 덕숭산에 머물며 선불교의 진흥을 위해 힘쓰다가 1946년 전월사에서 입적했다. 사후에 이라는 책이 편찬되었다.
출처/두산백과
작가의 경매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