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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재 정원항 嘐齋 鄭元恒Jeong WonHang

1823 ~ 1905

조선·근대

작가약력

  • 1823(순조 23)∼1905. 조선 말기 및 개항기에 활동했던 하동 출신의 유학자.

작가 소개

본관은 진양(晉陽). 자는 형칠(亨七), 호는 교재(嘐齋). 고조할아버지는 정한귀(鄭漢龜)이고, 증조할아버지는 정규진(鄭逵晉)이며, 할아버지는 정익선(鄭益善)이다. 아버지는 졸암(拙庵) 정서환(鄭筮煥)이며, 어머니는 하평호(河平浩)의 딸인 진양 하씨(晉陽河氏)이다. 생부는 정지환(鄭之煥)이고, 생모는 이원백(李元伯)의 딸 합천 이씨(陜川李氏)이다. 부인은 김상도(金尙檮)의 딸 금산 김씨(錦山金氏)이며, 그 사이에 3남 7녀를 두었다.
정원항(鄭元恒)은 어릴 적부터 공부하기를 좋아하였다. 향교에서 시행한 시험에 응시하였는데, 월포(月浦) 이우빈(李佑贇)이 그의 답안지를 보고서 크게 칭찬한 일이 있었다. 만년에 이르러서도 『대학(大學)』을 손수 베껴 깊이 연구하였으며,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으면 반드시 기록해 두었다가 나이를 막론하고 물어보았다.
아버지 정서환이 송나라 학자인 염계(濂溪) 주돈이(周敦頤)를 존숭하여 그의 화상을 직접 그리고 「졸부(拙賦)」를 지어 벽에 걸어 놓았는데, 정원항이 서문(序文)과 시(詩)를 지어 그 뜻을 서술하였다. 그러고는 당시에 명망이 있었던 한주(寒洲) 이진상(李震相), 쌍강(雙岡) 하홍운(河洪運), 만성(晩醒) 박치복(朴致馥), 월고(月皐) 조성가(趙性家), 후산(后山) 허유(許愈), 두엄(斗广) 강병호(姜柄瑚) 등에게 글을 구하여 소서(小序)와 시를 받았다.
1873년(고종 10) 9월에는 아버지, 11월에는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부모의 상을 함께 거행해야 할 경우의 상례(喪禮)에 관해 면우(俛宇) 곽종석(郭鍾錫)에게 질의하여 삼년상(三年喪)으로 치렀다. 만년에는 서숙(書塾)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여생을 보냈으며, 1905년(고종 42) 83세의 나이로 별다른 질병 없이 편안히 별세하였다.
저서로 문집 『교재집(嘐齋集)』 3권 1책이 있다. 정원항의 호이기도 한 ‘교재’는 공자가 말한 ‘광자(狂者)’에 대해 맹자가 “그 뜻이 크고 말이 원대한 사람[其志嘐嘐然]”이라고 설명한 것에서 따온 말이다. 정원항이 지은 글에 “광자는 옛날에 뜻이 크고 말이 원대한 사람이다. ‘중도(中道)를 행하는 선비를 얻어 함께하지 못할진대 광자를 얻어 함께할 것이라고 칭찬을 입은 것’은 내가 감히 자처할 수 없지만, ‘순임금은 어떠한 사람인가. 그와 같아지기를 기약할 것이다’라는 것은 내가 배우기를 원하는 바이다”라고 한 데서 그의 사상의 일단을 볼 수 있다.
1902년 수계(壽階)로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제수되었다. 금남면 대치리에 후손들이 정원항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재실인 오남재(鰲南齋)가 있다.
출처/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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