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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당 민영달 藕堂 閔泳達Min YeongDal

1859 ~ ?

조선

작가약력

  • 1859(철종 10)∼? 조선 말기의 문신.

작가 소개

본관은 여흥(驪興). 호는 우당(藕堂). 군수 민관호(閔觀鎬)의 아들이다.
1885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1892년 경기도관찰사를 거쳐 형조판서·예조판서·좌참찬 등을 역임하였다. 1894년 호조판서로 있다가 김홍집내각(金弘集內閣)의 내부대신이 되었다. 1895년 을미사변으로 명성황후(明成皇后)가 시해되자 사직하였다. 민영달은 명성황후의 종형제로서 지혜가 있고 권략(權略)이 풍부하여 동족(同族) 중 지도적 위치에 있었다. 당대의 정객인 이완용(李完用)과 이윤용(李允用)을 조종할 정도로 수완이 있었으며 이재(理財)의 재간도 뛰어났다. 동학혁명이 일어나자 대부분의 대신들이 청국에 구원을 요청하려 하였으나, 이에 반대하고 일본에 구원을 요청할 것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1910년 일제가 한반도를 강점한 뒤 민영달에게 남작의 작위를 주려 하였으나 거절하였다. 1921년 동아일보사에 5,000원을 출자하기도 하였다.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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