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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암 스님 西庵SeoAhm Buddhist Monk

1917 ~ 2003

한국

작가약력

  • 1917∼2003. 승려.

작가 소개

본명은 송홍근(宋鴻根)이며, 서암은 법호(法號)이다. 1917년 경상북도 안동시 녹전면에서 태어났다. 충청북도 단양의 대강보통학교를 거쳐 경상북도 예천의 대강학원에서 한학과 신학문을 익힌 뒤, 일본 니혼대학[日本大學] 종교학과를 졸업하였다.
1932년 예천 서악사(西嶽寺)에 출가해 1935년 문경 김룡사(金龍寺)에서 화산(華山) 스님을 은사로 득도하고, 낙순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받았다. 이어 1937년 역시 김룡사에서 금오(金烏) 선사로부터 비구계와 보살계를 받고 대덕법계(大德法戒)를 품수(稟受)하였다.
1943년 철원 심원사(深源寺)에서 1년간 《화엄경》을 강의하고, 이듬해 문경 대승사(大乘寺) 바위굴에서 성철(性徹)·청담(靑潭:이순호) 스님과 함께 용맹정진한 후, 1945년 8·15광복과 함께 불교 청년운동을 전개하였다. 1946년 계룡산 나한굴에서 ‘나고 죽는 것은 본래 없다(本無生死)’는 깨달음을 얻고 오도송을 읊었는데, 후에 사람들이 물으면 ""오도송인지 육도송인지 그런 거 없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1952년 이후에는 주로 문경 청화산(靑華山) 원적사(圓寂寺)에 주석하면서 1969년까지 계룡산 정진굴, 청화산 원적사, 속리산 중사자암(中獅子庵), 부산 범어사(梵魚寺) 금오선원, 태백산 각화사(覺華寺), 도봉산 천축사(天竺寺) 등 전국 각지를 오가며 한거(閑居)와 정진을 거듭하였다. 1975년 제10대 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내고, 1979년에는 경상북도 문경시 가은읍의 희양산(曦陽山) 봉암사(鳳巖寺) 조실로 있으면서 낙후된 가람을 새롭게 중창하고 승풍을 바로잡는 한편, 전국에서 유일하게 일반인에게 산문(山門)을 통제하여 조계종 종립선원으로 제정하였다.
1991년 조계종 원로회의 의장을 맡아 성철 스님을 종정으로 재추대한 뒤, 1993년 제8대 종정이 되었다. 이듬해 종정직과 봉암사 조실을 사임한 뒤에는 거제도·삼천포·팔공산을 거쳐 태백산에 무위정사(無爲精舍)라는 가건물을 짓고 무위자적하다 2001년 봉암사 염화실(拈花室)로 돌아와 안거하던 중 2003년 3월 29일 열반하였다.
조계종단 내 대표적인 선승(禪僧)으로 꼽히며, 출가한 후 참선에만 몰두하였다. 임종을 앞두고 제자들이 열반송을 묻자 "달리 할 말이 없다. 정 누가 물으면 그 노장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갔다고 해라. 그게 내 열반송이다."는 말만 남겼다고 한다.
출처/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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