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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허 서동진 小虛 徐東辰Seo DongJin

1900 ~ 1970

근대·현대

서양화

작가약력

  • 학력 사항
  • 1924, 일본 유학
  • 휘문고등보통학교에서 춘곡 고희동(春谷 高羲東, 1886-1965) 사사
  • 경력 사항
  • 1961, UN총회 한국대표
  • 1960, 국회 외교분과 위원장
  • 1954, 국회의원
  • 1951,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 경상북도 지부장
  • 1950~1954, 대구 화우회장
  • 1950, 대구 화우회 창설
  • 후생회 원장
  • 원호회 회원
  • 철공협회 의원
  • 경상북도 청년회 회원
  • 1930, 향토회 창립 회원
  • 1928, 영과회 창립 회원
  • 1927, 대국미술사 설립
  • 전시 이력
  • 개인전
  • 1928, 개인전
  • 1927, 개인전, 조양회관
  • 단체전
  • 1998~1999, 다시 찾은 근대미술, 국립현대미술관
  • 1997~1998, 한국근대미술:유화-근대를 보는 눈, 국립현대미술관
  • 1945, 8.15 해방기념전
  • 수상 내역
  • 1928~1932, 제7회, 8회, 10회, 11회 조선 미술전람회 입선

작가 소개

호는 소허(小虛). 대구 출신. 대구에서 휘문고등보통학교에서 고희동에게 사사했고, 1924년에 일본에서 유학을 했다. 그 후 독학으로 수채화를 그리며 귀국 후에 고향인 대구로 돌아와 ‘대구미술사(大邱美術社)’를 설립하여 서양화의 재료와 기법을 보급하고 지도했으며, 이인성(李仁星)·김용조(金龍祚) 등 불우했던 후배에게 많은 격려와 자극을 주었다. 1928년에는 지역 최초의 서양화가 단체인 ‘영과회(零科會)’와 1930년에는 ‘향토회(鄕土會)’를 이끌며 양화학도들의 모임과 동인작품전에서 구심점 역할을 하며 대구 미술 발전에 이바지했다.
서동진의 일본에서의 정확한 활동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수채화 기법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익혔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는 주로 현장 사생으로 향토색을 보여 주는 대구의 풍경을 그렸다. 그는 주로 대구일원의 거리와 마을을 사생한 수채화로 일관하였는데, 수채화를 유화와 비교하여 부수적인 기법으로 여기던 기존의 인식에서 벗어나 중심 기법으로 다루어 발전시킨 작가라는 평가를 받는다. 1928년부터 1932년까지 조선미술전람회(朝鮮美術展覽會)에 수채화로 그린 풍경화를 네 차례 출품하여 모두 입선하였다. 대표작으로는 「오후의 풍경」(1931년), 「뒷골목」(1932년) 등이 있다.
광복 후 1950년의 대구화우회(大邱畫友會)의 창립에 참여한 일을 끝으로, 화가의 위치에서 떠나 신문사 중역, 학원 재단이사장 등을 지내다가, 1954년에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정계로 나아갔다.
출처/한국학중앙연구원, 월간미술, 국립현대미술관

작가의 경매 작품

제 42회 장터경매

제 40회 장터경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