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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권희연의 근작 ‘生-낮은 곳’ 에 나오는 풀들은 거의가 이름 없는 풀이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풀이다. 이름이 풀이지 풀같지 않는 풀이다. 다시 말하지만 기호로서의 풀이다. 풀을 닮은 기호를 써서 풀처럼 보이도록 한 거다. 풀은 기실 작가가 자연의 사물을 ‘의상(意象)’,을 빌려 나타내기 위한 미소 수단이자 분자적 단위로 차용되었다. 자연과 의상의 접점을 시도하기 위한 ‘대리물’로 등장시켰다. 자연에다 의와 상의 집합의 논리를 대응시키기 위해서다. 풀을 그리되 풀의 상을 간과 일을 준거로 기호처럼 약호화한 게 눈에 띈다. 권희연의 근작들은 특히 겸재(謙齋)의 진경(眞景)에서 청전(靑田)의 내경(內景)에 이르는 우리의 전통 화맥에서 보아 그 나름의 차별성을 갖는다. 그 동안 대부분의 작가들이 전자와 후자 사이에서 갈 길을 찾지 못하고 있는 데다 송(宋)대의 남북종화의 이분법에서 마저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겸재의 진경을 숭앙한 나머지 그 진의를 오늘의 시점에서 재검토하지 않은 채, 양식적으로만 부단히 연장시키려는 작위를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한국화 하면 으레 진경, 실경, 사경의 어느 경우여야 한다든지, 그렇잖으면 의상 중심의 관념 산수거나, 형사 중심의 실경산수여야 한다는 양자택일의 관습이 만연해 있다. 권희연의 근작들은 차제에 이러한 이분법들을 넘어 제 3의 길을 모색하고 있어 그 의의가 여간 크지 않다.
출처/월간미술, 김달진미술연구소, 국립현대미술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