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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종례 黃鐘禮Hwang ChongNye
1927 ~
한국
도예
작가약력
- 학력사항
- 1962,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도예 석사
- 1950, 이화여자대학교 서양화 학사
- 기관 경력
- 1995~1995, 단국대학교 도예과 강사
- 1993, 국민대학교 명예교수
- 1991~1994, 대한민국미술협회 부이사장
- 1989, 한국도자기문화진흥협회 이사, 부회장
- 1988, 대한산업미술가협회 이사장, 고문
- 1982, 서울신문 도예공모전 초대작품 심사위원
- 1975~1993, 국민대학교 조형대학 공예미술학과 교수
- 1968~1981, 대한산업디자인전 심사위원
- 1965~1966, 상명여자대학교 미술교육과 조교수
- 1963~1981,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 도예과 강사
- 1961~1984, 대한산업미술가협회 회원
- 한국현대도예가회 회원
- 전시
- 개인전
- 2014, 부드러운 힘 – 황종례展, 국립현대미술관
- 2002, 한국현대도예특별전, 리가로야루갸라리, 오사카
- 2001, 한국현대도예특별전, 긴자화랑, 동경
- 2001, 한국현대도예특별전, 야마고백화점, 갑부시
- 1993, 도예개인전, 신세계미술관
- ...
- 1967, 도예개인전, 미8군 전시장
- 1966, 도예개인전, 신문회관
- 1964, 도예개인전, 신문회관
- 1963, 도예개인전, 서울중앙공보관
- 1961, 도예개인전, 서울중앙공보관
- 단체전
- 2005, Asia Ceramics Network, 한국문예진흥원 전시장
- 2004, 서울미술대전, 서울시립미술관
- 2004, 한국현대도예가회 한·중현대도자교류전, 경덕진도자대학 전시실
- 2004, 제56회 대한산업미술가협회 회원전, 한국국제디자인프라자
- 2004, 한국미술여행전, G와 일레븐그룹
- ...
- 2001, 광주도자기미술관, 경기도
- 2001, 동양도자전, 경기대학교
- 2000, 도림전, 이화미술관
- 2000, 동양도자전, 경기대학교
- 2000, 대한산업미술가협회전, 한국산업디자인진흥원
- 2000, 21C를 여는 지성과 감성전, 예술의전당
- 2000, 대한민국원로작가 초대전, 서울시립미술관
- 등 전시
- 수상
- 1998, 옥관문화훈장
- 1993, 예총 공로상
- 1990, 대한민국문화예술상, 미술부문
- 1974, 대한민국미술전람회 국무총리상
작가 소개
황종례의 아버지인 황인춘(黃仁春, 1894~1950)과 오빠 황종구(黃鍾九, 1919~2003) 모두 청자 재현과 도예 교육에 힘썼다. 황종례의 아들 이영학(李泳學, 1957~) 상명대학교 도예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황종례는 이화여자대학교 학부시절 서양화과를 전공하였다. 김인승을 비롯하여 청전 이상범, 김옥진, 안동숙으로부터 초상화 및 사군자와 바위, 산 등을 다양한 방법으로 그리는 기법을 배웠다. 이후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에 신설된 도예과에 입학하면서 도예가로서 기초를 다지기 시작하였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등 힘겨운 역사가 더해져서 황종례가 겪은 청년기에는 당시, 일반적인 도예 교육을 받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도자를 전승, 제작하는 집안 고유의 분위기는 그를 지지하는 가장 큰 바탕이 되었다.
황종례는 색유 작업을 가장 한국적인 방법으로 표현해 온 작가이다. 그는 한국 도자의 매력을 “텁텁하면서 자유스럽지만 구수한 맛이 느껴진다.” 라고 하면서, 조선 초기 유행하였던 분청사기를 선호하였다. 작가는 초기에는 대체로 어두운 계열의 작품들을 다수 제작하나 차츰 자주, 북청색, 갈색유, 녹유 등 다양한 색유를 시도하게 된다. 1970년대 이후부터는 귀얄문 기법을 활발하게 사용하기 시작하였는데, 특히 1978년 제9회 개인전에서는 귀얄문이 있는 색유의 회화성을 강조하는 기물들을 선보였다. 3년 후인 1981년 제12회 개인전에서는 보다 현대화된 분청에 색채 유약(釉藥)을 흑색과 더불어 사용하였고, 전통 문양을 적용시킨 예도 있다. 이 시기에 작가는 무광택유로써 갈색이나 회색, 청색이 그림과 유약에 그대로 드러나는 투명유약을 개발하기도 하였다.
황종례는 색유 작업을 가장 한국적인 방법으로 표현해 온 작가이다. 그는 한국 도자의 매력을 “텁텁하면서 자유스럽지만 구수한 맛이 느껴진다.” 라고 하면서, 조선 초기 유행하였던 분청사기를 선호하였다. 작가는 초기에는 대체로 어두운 계열의 작품들을 다수 제작하나 차츰 자주, 북청색, 갈색유, 녹유 등 다양한 색유를 시도하게 된다. 1970년대 이후부터는 귀얄문 기법을 활발하게 사용하기 시작하였는데, 특히 1978년 제9회 개인전에서는 귀얄문이 있는 색유의 회화성을 강조하는 기물들을 선보였다. 3년 후인 1981년 제12회 개인전에서는 보다 현대화된 분청에 색채 유약(釉藥)을 흑색과 더불어 사용하였고, 전통 문양을 적용시킨 예도 있다. 이 시기에 작가는 무광택유로써 갈색이나 회색, 청색이 그림과 유약에 그대로 드러나는 투명유약을 개발하기도 하였다.
출처/월간미술, 김달진미술연구소, 미술세계, 국립현대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