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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학 김동학 琴鶴 金東鶴Kim DongHak

1931 ~

한국

공예

중요무형문화재 93호 전통장(箭筒匠)

작가약력

  • 1950년, 부친 김용묵 선생에게서 전통제작 기능 전수
  • 1982년, 제7회 전승공예전 장려상
  • 1983년, 제8회 전승공예대전 문공부장관상
  • 1985년, 한국미협 경북월성지부 공예분과위원장
  • 1987년, 제12회 전승공예대전 문공부장관상
  • 1989년, 중요무형문화재 제93호 전통장 기능보유자 인정
  • 1992년, 제17회 전승공예대전 심사위원
  • 1995년, 경북 산업디자인 전람회 심사위원
  • 1999년, 청주비엔날레 공모전 심사위원
  • 2003년, 사)한국무형문화재기능보존협회 이사장
  • 2003년, 제4회 익산 한국공예대전 운영위원
  • 2005년, 제30회 대한민국전승공예대전 운영위원장
  • 2006년, 국가유공자 국무총리 표창
  • 2010년, 옥관문화훈장 수상

작가 소개

김동학은 경주 김씨로, 전통제작 기능의 근원은 증조부 김종연(1821~1864) 대로 올라간다. 증조부인 김종연은 조선 순조와 헌종 때 살았던 분으로 통정대부(당상관 정3품)를 지냈으며 스스로 전통을 제작하여 더러는 남에게 선사하기도 하고 동료들에게 화살과 화살통을 만들어 주기도 하였다. 김종연의 아들 김고성(1855~1908)은 부친의 재질을 이어받아 경북 영덕군 영해에 살면서 부친을 따라 무술을 익혔다.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자 아들 용묵·봉묵과 함께 산남의진(山南義陳)에 참여하였다. 김고성의 아들인 김용묵은 바로 김동학의 부친이다. 김용묵은 부친을 따라 의병의 진중을 다니며 의병의 역할을 하면서 화살과 전통을 만들어 제공하였다. 일제 강점기가 되자 영일군 신광면에서 충북 단양으로 피난하여 살았는데 김동학은 여기서 출생해 살다가 해방 후 포항으로 이사하였다.
김동학은 부친 밑에서 일하는 것을 눈으로 익혔다. 그러나 부친은 김동학으로 하여금 절대로 화살통이나 화살을 만들지 못하게 하였다. 그러나 한국전쟁이 지나고 그 무렵 김동학은 뚜렷한 직업도 없고 학교도 다니지 못하여 아버지의 일을 틈틈이 배워서 화살통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어려서부터 손재주가 남달리 특출하여 아버지가 만드는 일을 거들어 주었는데 그때 대나무를 다루는 방법을 배우고 화살통의 고리를 조각하는 기법 등을 틈틈이 익혔다. 본격적으로 화살통을 제작하기 시작한 때는 부산에서 고학으로 야간 고등학교를 다니다 돌아온 직후부터였다. 전국에서 활쏘는 운동이 일어나 화살통이 수요가 급증하게 되었으나 아버지가 고령으로 일을 못하자 아버지의 소개로 경북 예천읍에서 활과 화살을 공급하고 있는 권영록을 찾아가게 되고 그분의 권유로 전승공예대전도 출품하고 화살통을 제작하고 공급하는 일을 하게 된다. 솜씨가 널리 알려져 청와대에서도 주문이 들어오고, 레이건 대통령이나 후꾸다 수상 등 외국 정상들의 선물용으로도 주문이 들어왔다. 1970년부터 전국을 돌면서 화살통을 주문받아 작업을 하였으나 화살통이 워낙 섬세한 세공이고 세밀한 조각과 장식이 필요하기 때문에 별로 수지가 맞지 않았다. 또한, 화살통은 소비성이 아니기 때문에 한 번 사면 평생을 사용할 수 있어 화살통 만드는 일은 점점 쇠퇴하여 갔다. 그러나 그 직업을 버리지 않고 꾸준히 계속하여 1989년 중요무형문화재 제93호 전통장 기능보유자로 인정되었으며, 순수한 전통적인 방법으로 한국 고유의 전통(화살통) 제작 기능을 이어오고 있다.
출처/한국문화재단, 서라벌신문

작가의 경매 작품

제 47회 장터경매

제 46회 가을경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