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소개
1858년 12월 7일 경기도용인에서 출생했다. 본관은 반남(潘南), 호는 평재(平齋)이고 참정 박홍수(朴洪壽)의 아들이다. 1883년(고종 20) 문과(文科)에 급제, 천진주 차종사관(天津駐箚從事官)ㆍ교리(校理)ㆍ장령(掌令)ㆍ동부승지(同副承旨)ㆍ천진주차 독리통상사무(督理通商事務)ㆍ공조참의(工曹參議)ㆍ이조 참의, 각 조(曹)의 참판, 전라도 관찰사 충청도 관찰사ㆍ중추원 의관(中樞院議官)ㆍ외부 협판(外部協辦)ㆍ외부대신 등을 역임했다. 전권대신으로 1899년 한청 통상조약(韓淸通商條約)을, 1901년에 한비수호통상조약(韓比修好通商條約)과 한백 수호통상조약(韓白修好通商條約)을 체결하고 1902년 주청 전권공사(駐淸全權公使)가 되었다가 1904년 귀국하여 다시 외부 대신, 이어 의정부 찬정(議政府贊政), 1905년에 한규설(韓圭卨) 내각의 외부대신이 되어 을사조약에 조인(調印), 5적신(賊臣)의 한 사람으로 규탄 받았다. 이해에 한규설의 뒤를 이어 참정대신(參政大臣)이 되고 1907년 중추원 고문으로 전임, 1909년(융희 3)에 이완용(李完用) 내각의 내부대신(內部大臣)이 되어 1910년 국권 침탈에 서명하여 일본정부에 의해 자작(子爵)이 되었고, 유림(儒林)의 태두(泰斗)로 이름이 높았으며 글씨는 해서(偕書)ㆍ행서(行書)에 능했다.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인명사전
작가의 경매 작품
제 35회 장터경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