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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남 송치헌 蘇南 宋致憲Song ChiHeon
1887 ~ 1963
근대·현대
서예
작가약력
- 1887(고종 24)∼1963. 서예가.
작가 소개
자는 경태(景泰), 호는 소남(蘇南). 충청북도 옥천 출생. 할아버지는 천(薦)으로 경연관(經筵官) 동부승지를 역임한 달수(達洙)이며, 아버지는 청도군수를 지낸 병종(秉琮)이다.
그는 일찍이 서울에 와서 서법에 뜻을 두고 한말의 제가(諸家)와 교유하면서 정진하여 예서와 초서에 대성하였다. 젊어서는 경성부청(京城府廳 : 서울시청)에 근무한 적이 있으며, 자신의 서예를 자랑한 적이 없었다.
광복 후 국전 서예부 심사위원을 역임하고 동방연서회(東方硏書會) 창설회원의 일원으로 동회전(同會展)에 출품하면서 서예동호인과 후진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바 있다.
송치헌은 예서(隷書)에는 한예(漢隷)에 치중하였으나 주로 조전비(曹全碑)와 공주비(孔宙碑) 및 봉용산송(封龍山頌) 등 원필예(圓筆隷)에 주력하여 당대의 누구도 추종할 수 없을만한 경지에 이르렀고, 또 초서(草書)로는 특히 중국 당나라 서가(書家)인 손과정(孫過庭)의 『서보(書譜)』를 득력(得力)하여 탈속의 높은 계경(界境)을 개척하였다.
일생 동안 서법에 정진하면서 자신의 경지를 과시하거나 또는 속된 부류들과 상종함이 없이 빈한한 생애를 끌어나가면서도 모든 것에 초탈한 은자(隱者)로서 생을 마쳤다.
그는 일찍이 서울에 와서 서법에 뜻을 두고 한말의 제가(諸家)와 교유하면서 정진하여 예서와 초서에 대성하였다. 젊어서는 경성부청(京城府廳 : 서울시청)에 근무한 적이 있으며, 자신의 서예를 자랑한 적이 없었다.
광복 후 국전 서예부 심사위원을 역임하고 동방연서회(東方硏書會) 창설회원의 일원으로 동회전(同會展)에 출품하면서 서예동호인과 후진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바 있다.
송치헌은 예서(隷書)에는 한예(漢隷)에 치중하였으나 주로 조전비(曹全碑)와 공주비(孔宙碑) 및 봉용산송(封龍山頌) 등 원필예(圓筆隷)에 주력하여 당대의 누구도 추종할 수 없을만한 경지에 이르렀고, 또 초서(草書)로는 특히 중국 당나라 서가(書家)인 손과정(孫過庭)의 『서보(書譜)』를 득력(得力)하여 탈속의 높은 계경(界境)을 개척하였다.
일생 동안 서법에 정진하면서 자신의 경지를 과시하거나 또는 속된 부류들과 상종함이 없이 빈한한 생애를 끌어나가면서도 모든 것에 초탈한 은자(隱者)로서 생을 마쳤다.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