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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희영 柳熙永Ryu HeeYoung
1940 ~
한국
서양화
작가약력
- 학력
- 1962년 서울대학교 서양화 학사
- 1980년 중앙대학교 대학원 석사
- 기관 경력
- 1972년 경희대학교 조교수
- 1975년 경희대학교 부교수
- 1979년-1983년 경희대학교 교수
- 1980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심사위원
- 1980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초대작가
- ...
- 2002년 제17회 Asia국제미술전람회 추진위원장
- 2003년-현재 국립현대미술관 운영자문위원장
- 2006년 7월-현재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 2006년-현재 이화여대 명예교수
- 2007년-현재 서울시립미술관 관장
- 2008년 서울시 문화상 심사위원장
- 2012년 이중섭미술상 심사위원장
- 등 역임
- 전시
- 1979년, 개인전 8회
- 1985년 5월, 제6회 개인전, 서울,파리
- 1986년 6월, 서울시미술대전 초대전
- 1988년 8월, 88 서울올림픽 한국현대회화전
- 1989년 11월, 한국현대회화전, 호암갤러리
- 1991년, 경주 선재현대미술관 개관기념전
- ...
- 2000년, 새천년 3.24전, 서울시립미술관
- 2002년, 한국추상회화의 이해, 성곡미술관
- 2003년, 유희영 개인전-정신의 창으로서의 색면, 갤러리현대
- 2004년, 한국서양화중진작가 초대전, 서울시립미술관
- 2008년, 한국추상회화 1958-2008, 서울시립미술관
- 2009년, 부산국제비엔날레전, 부산시립미술관
- 2010년, 한국 드로잉 30년전, 소마미술관
- 2010년, 한국현대미술 중심에서, 현대화랑
- 2011년, 한국현대작가전, 대만국립현대미술관
- 2013년, 유경채, 유희영 회화 2인전, 준아트갤러리
- 2013년, 70년대 한국추상회화, 아라리오미술관
- 등 전시
- 수상
- 1969년, 문공부장관상
- 1971년, 문공부장관상
- 1974년, 제23회 대한민국미술전 대통령상
- 1979년, 제28회 국전추천작가상 예술원회장상
- 2005년, 황조근정 훈장
- 2008년, 3.1 문화상
- 2009년, 대한민국미술인상
- 2013년, 5.16 민족상
작가 소개
색면화가로 잘 알려진 류희영이 화가로 입문할 당시 그의 작업경향은 반구상 화풍이었다. 스승인 편정 류경채(片丁 柳景埰, 1920-1995)의 영향으로 자신이 바라보는 자연 또는 사물의 구상성을 완전히 버리지 않고 이를 화면 속에서 선과 면에 의해 재구성하는 방식을 채택하였다. 초기 작품이 격정적인 필획의 구사, 풍부한 색채가 위주였다면 최근 작품은 색띠와 색면만이 남게 된다.
류희영의 작품은 기하학적 형태에 근거한 주지적 경향과 비정형을 매개로 한 주정적 경향의 두 요소가 서로를 반향하면서 한 화면에 공존하고 있다. 그의 화면에서 추상미술의 역사 전체를 관통하는 추상의 두 의지가 만나고 있는 셈인데, 그것은 우리 현대미술사에서 이 작가가 차지하는 독특한 자리를 드러내는 증표이기도 하다. 20대초에 이미 국전에 데뷔하여 30대 초반에 최고상을 수상한 화려한 경력이 말해주듯이 류희영은 우리 현대미술사의 한가운데에 있었음에도, 항상 당대의 주류에 초연한 위치를 지켜 왔다. 기하학적 추상미술이 유행하던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 초, 그리고 모노크롬의 전성기인 1970년대 중반이후 1980년대 중반까지 그는 비정형의 추상을 지속해 왔고, 그가 사각형의 색면을 기용하기 시작한 1980년대 중엽도 민중미술을 위시한 변화과정으로 바라볼 때 그 면모가 더욱 뚜렷이 드러난다. 류희영은 작품의 근원을 예술가 주체에 두고자 하는 이 시대의 전형적 모더니스트이다. 그에게는 논리와 감성, 의지와 즉흥, 인공과 자연, 형식과 내용 등 추상미술에 내재된 대립 항들이 양자택일의 과제가 아니었다. 대부분의 현대 추상화가들 이 둘 중 하나에 경도되어 온 것에 비해 그는 그 대립 항들을 완벽한 조화의 화음으로 연주 해낸다는 어려운 과제를 스스로 떠맡아 필생의 목표로 삼아 온 셈이다.
류희영의 작품은 기하학적 형태에 근거한 주지적 경향과 비정형을 매개로 한 주정적 경향의 두 요소가 서로를 반향하면서 한 화면에 공존하고 있다. 그의 화면에서 추상미술의 역사 전체를 관통하는 추상의 두 의지가 만나고 있는 셈인데, 그것은 우리 현대미술사에서 이 작가가 차지하는 독특한 자리를 드러내는 증표이기도 하다. 20대초에 이미 국전에 데뷔하여 30대 초반에 최고상을 수상한 화려한 경력이 말해주듯이 류희영은 우리 현대미술사의 한가운데에 있었음에도, 항상 당대의 주류에 초연한 위치를 지켜 왔다. 기하학적 추상미술이 유행하던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 초, 그리고 모노크롬의 전성기인 1970년대 중반이후 1980년대 중반까지 그는 비정형의 추상을 지속해 왔고, 그가 사각형의 색면을 기용하기 시작한 1980년대 중엽도 민중미술을 위시한 변화과정으로 바라볼 때 그 면모가 더욱 뚜렷이 드러난다. 류희영은 작품의 근원을 예술가 주체에 두고자 하는 이 시대의 전형적 모더니스트이다. 그에게는 논리와 감성, 의지와 즉흥, 인공과 자연, 형식과 내용 등 추상미술에 내재된 대립 항들이 양자택일의 과제가 아니었다. 대부분의 현대 추상화가들 이 둘 중 하나에 경도되어 온 것에 비해 그는 그 대립 항들을 완벽한 조화의 화음으로 연주 해낸다는 어려운 과제를 스스로 떠맡아 필생의 목표로 삼아 온 셈이다.
출처/월간미술, 김달진미술연구소, 국립현대미술관, 한국예술디지털아카이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