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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 고영문 南舟 高永聞Ko YeongMun

1841 ~ ?

조선

한국화

작가약력

  • 1841(헌종 7)~?. 조선 말기의 화가·개화사상가.

작가 소개

본관은 제주(濟州)이며 초명은 영문(永文), 자는 성욱(聖郁), 호는 남주(南舟)이다. 제주도 출신의 도화서 화원 화가이며, 아버지인 우관 고진승(藕館 高鎭升, 1822-?)의 뒤를 이어 화원화가로 활동하였다. 만년에는 수묵산수를 즐겨 그렸다.
조선 말기에는 개화사상가로 활동하였는데, 1882년(고종 19) 9월 일곱 가지 항목의 긴급한 일을 들어 시무상소를 올렸다. 첫째 서구의 기예(技藝)를 학습할 것, 둘째 식무(識務)가 있는 사람을 널리 구할 것, 셋째 광산을 개발할 것, 넷째 50호(戶)를 1구(區)로 하여 구마다 장(長) 1인을 둘 것, 다섯째 상회소(商會所) 및 국립은행을 설치할 것, 여섯째 인천항에 해군을 둘 것, 일곱째 용관(冗官)·잡공(雜貢)을 없앨 것 등이다. 특히, 서양기술 도입과 관련해서는 서양 각국에 사신을 파견하여 우호를 신장하고, 그곳의 기술교사를 청하여 우리나라 상하 인민들에게 새 기술을 습득시킬 것을 주장하였다. 또, 공의당(公議堂)을 설치하여 시무에 밝은 인사들을 참여시키고, 그들로 하여금 정사(政事)의 논의를 돕게 할 것을 건의하였다. 이와같은 사상은 이미 동도서기적 차원(東道西器的次元)을 넘어서 본격적인 개화사상단계의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채서(採西)의 대상을 서양기술에만 한정하지 않고, 제도·법제의 차원까지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당시의 개화사상가들과의 관련은 확실하지 않다.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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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2회 가을경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