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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주 이진상 寒洲 李震相Lee JinSang

1818 ~ 1886

조선

작가약력

  • 1818(순조 18)∼1886(고종 23). 조선 말기의 유학자.

작가 소개

본관 성산(星山). 호 한주(寒洲). 자 여뢰(汝雷). 경상북도 성주 한개[大浦] 출생. 아버지 원호(源祜)에게 8세 때 《통감절요(通鑑節要)》를 배우고 13세에는 사서삼경(四書三經)을 다 읽었다. 경사(經史)·정무(政務) ·문장(文章) ·제도(制度)를 비롯 성력(星曆) ·산수(算數) ·의방(醫方) ·복서(卜筮)에 이르기까지 모두 섭렵하려 하였다. 17세 때 숙부 원조(源祚)의 교훈으로 성리학에 전념하였다. 일찍부터 과거에 뜻을 두었으며 15,6세 때부터 대과책문(大科策文)을 짓기 시작하여 우수한 책문가로 알려졌다.
1857년(철종 8) 청나라에서 반란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사대의 예를 철폐하자는 취지의 상소문을 지었으며, 1862년 삼남 전역에 민란이 일어나 조정에서 삼정문란(三政紊亂)의 대책을 묻는 윤음(綸音)이 발표되어 ‘응지대책(應旨對策)’을 올렸으나 왕의 비답(批答)을 받지는 못하였다. 1866년 국가제도의 개혁안을 제시한 《묘충록(畝忠錄)》을 저술하였다. 1871년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의 서원철폐령에 대해 반대운동을 벌였고, 1876년 운요호사건[雲揚號事件] 소식을 듣고 의병을 일으키려 하였다가 화의 성립으로 중단하였다. 또 천주교의 전파를 서양과 통상함을 우려, 《대학》 《심경(心經)》을 자주 강조하였다. 1880년 김홍집(金弘集)이 일본에서 《조선책략(朝鮮策略)》을 가져오자 척사의 뜻으로 글을 지어 고을에 돌렸다.
그는 주자(朱子)와 이황(李滉)의 주리론을 중심사상으로 하고 이일원론(理一元論)을 주장하였다. 그의 학문에 대한 비판·분석·전개는 심오했으며 마침내 심즉이설(心卽理說)에 이른다. 문인으로는 곽종석(郭鍾錫) ·허유(許愈) ·이정모(李正模) ·윤주하(尹胄夏) ·장석영(張錫英) ·이두훈(李斗勳) ·김진호(金鎭祜) 등이 있으며 이들을 ‘주문팔현(洲門八賢)’이라고 한다. 문집으로 《한주집(寒洲集)》이 있고 그 밖의 저서로 《이학종요(理學綜要)》(22편 10책) 《사례집요(四禮輯要)》 《춘추집전(春秋集傳)》 《직자심결(直字心訣)》 등이 있다.
출처/두산백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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