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검색

작품이미지

죽농 안순환 竹濃 安淳煥Ahn SunHwan

1871 ~ 1942

근대

서화

작가약력

  • 1871∼1942. 조선음식 전문가·서화가.

작가 소개

호는 죽농(竹濃) · 경제(敬齊), 본관은 순흥(順興)이다. 말년에 이름을 교환(敎煥)으로 개명하였다. 1871년 2월 8일 안순식(安舜植)과 청주한씨(淸州 韓氏) 사이에서 4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1890년 결혼 후 서화상(書畵商)으로 활동하였다. 25세에는 관립영어학교에 입학하고, 무관학교에서도 수학하였으며, 1899년 탁지부(度支部) 전환국(典圜局) 건축 감독으로 관직에 진출하였다. 이후 판임관 육등(判任官 六等), 전환국 기수(典圜局 技手)를 거쳐, 궁내부 전선사 장선(典膳司 掌膳) 및 주선과장(主膳課長)을 거치면서 어선(御膳)과 향연(饗宴)을 담당하였으며, 정3품 이왕직 사무관 등을 역임했다. 일진회(一進會) 회원이기도 한다.
이후 퇴궁하여 대령숙수(待令熟手) · 궁중기녀들과 함께 1909년 양옥을 지어 명월관(明月館)을 개업하고 궁중요리를 일반에게 공개하였다. 또한 태화관(泰和館)을 운영했고, 1920년 12월에는 세 번째로 식도원(食道園)을 개업하였다. 장안 최고의 요리집으로 알려진 식도원은 경성 남대문동에 자리하여 서화협회 등 서화계의 크고 작은 모임의 장소가 되어 더욱 의미가 큰 곳이다.
사업가로서의 활동 이외에도, 시흥 송록동(松鹿洞)에 녹동서원(鹿洞書院)을 창설하여 조선유교회(朝鮮儒敎會), 즉 명교학원(明敎學院)을 설립하고 유교의 종교화에 앞장섰다. 『단군교부흥경략(檀君敎復興經略)』에 의하면 1932년 이곳에 단성전(檀聖殿)을 건립하였던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는 민족종교인 단군교와의 유대를 통해 유교의 발전을 시도했던 것이라 할 수 있다. 서울 광화문 새문안교회 자리에 있었던 개화기의 사설극장인원각사(圓覺社)의 사장을 맡기도 하는 등 근대기 교육 · 종교 · 문화예술 전반에 걸쳐 영향력이 컸다.
서화가로서는 사군자, 특히 난초를 잘 그렸으며, 조선미술전람회에도 출품해, 1922년 1회에 <석란(石蘭)>, 1925년 4회에 <묵화석란(墨畵石蘭)>으로 입선하였다. 주로 김응원의 필치를 따른 소호풍(小湖風) 묵란을 남겼는데, 바위를 배경으로 가늘고 꺾임이 많은 난엽들을 유려하게 표현했다. 유작으로는 성신여자대학교 박물관 소장의 《묵란도병풍》이 있는데, 다양한 포치를 구사한 세련된 기법을 엿볼 수 있다.
안순환의 난죽화는 전국의 유명 사찰 편액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다. 교분이 두터웠던 김규진이 쓴 순천 송광사 · 속리산 법주사 · 부여 고란사 · 공주의 마곡사 · 수원 용주사 · 합천 해인사 등 편액에 대나무와 난초를 그려 장식하였다. 이 외에도 김규진의 금강산 여행 등에 동반하였음을 『매일신보』의 기사에서 확인 할 수 있으며, 김규진의 『해강일기(海岡日記)』에도 안순환의 이름은 자주 등장하여 예술문화계는 물론, 서화계에서의 그의 역할 또한 컸음을 알 수 있다. 1942년 8월 20일 72세에 사망, 녹동서원이 자리했던 시흥시 송록동에 안장되었다.
출처/국립문화재연구소

작가의 경매 작품

제 42회 장터경매

제 29회 장터경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