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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송당 김시 養松堂 金禔Kim Si

1524 ~ 1593

조선

한국화

작가약력

  • 1524(중종 19)∼1593(선조 26). 조선 중기의 문인화가.

작가 소개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계수(季綏), 호는 양송당(養松堂)·양송헌(養松軒)·양송거사(養松居士)·취면(醉眠). 좌의정을 지낸 안로(安老)의 아들이며 화명(畵名)이 있는 기(祺)의 아우이다. 문인화가 식(埴)은 손자이다.
1537년 혼인하던 해에 폭정을 한 아버지 안로가 정유삼흉(丁酉三凶)으로 몰려 사사되자 과거와 벼슬길이 막혀 독서와 서화로 일생을 보냈다. 잠시 사포서(司圃署) 별제(別提)와 사포를 지냈다. 1590년에 광국원종공신(光國原從功臣)에 녹훈된 점으로 미루어 당시 명성이 높던 선비 화가로서 궁중의 그림 그리는 일에도 참여한 듯하다.
이이(李珥)의 동생인 우(瑀)와 함께 금강산을 유람한 일화가 전해 오며, 이황(李滉)의 『퇴계집』에는 소 그림에 대한 찬문이 실려 있다. 최립(崔笠)의 시문, 한호(韓濩)의 글씨와 더불어 당대의 삼절(三絶)로 일컬어졌다. 숙종 때 문인화가 윤두서(尹斗緖)가 김시를 안견(安堅)에 버금가는 화가로 평가하였듯이, 산수·인물·우마·화조·초충 등 여러 분야의 회화에 뛰어난 재질을 발휘하였다. 그리고 현재 남아 있는 그의 작품이나 전칭 작품으로는 산수·인물·소 그림·화조 등이 있다.
이들을 보면 안견파 화풍(安堅派畵風)과 남송(南宋) 원체 화풍(元體畵風: 궁정의 화원(畵院)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화풍)을 따르면서도 당시로서는 새로운 화풍이었던 절파(浙派: 중국 명대 절강(浙江) 지역의 대진(戴進)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화파) 계통의 화풍을 적극 수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절파계 화풍의 경우 주로 명대(明代) 절파의 후기 양식을 섭렵하였다.
대표작인 「동자견려도(童子牽驢圖)」(삼성미술관 소장)는 절파 계통의 산수 인물화이고, 1584년 작인 「한림제설도(寒林霽雪圖)」는 안견 화풍의 잔영을 보여 주는 좋은 예이다. 그리고 「목우도(牧牛圖)」(일본, 개인 소장)·「황우도(黃牛圖)」(서울대학교 박물관 소장)·「하산모우도(夏山暮雨圖)」(국립중앙박물관 소장)·「우배도하도(牛背渡河圖)」(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등은 한국적 정취를 짙게 풍긴다.
그 밖에 유작으로 임진왜란 중에 그린 「매조문향도(梅鳥聞香圖)」(간송미술관 소장)와 도석인물화(道釋人物畵)로 선종화 냄새를 풍기는 「선록완월도(仙鹿翫月圖)」(간송미술관 소장) 등이 전한다. 그의 화풍은 그의 손자 식(埴)과 집(潗) 등 후손들에 의하여 계승되었다. 특히 절파 화풍의 경우 이흥효(李興孝)·이경윤(李慶胤)·김명국(金明國) 등 조선 중기의 17세기 화가들에게 크게 영향을 미쳤다.
16세기 후반의 화단에서 가장 영향력이 컸던 화가 중 하나였다. 그리고 조선 중기 절파 화풍의 세력을 누리는 데 선도적인 구실과 함께 조선 초기와 중기를 잇는 교량적 위치에 놓여 있는 작가이다.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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