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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당 이재복(용봉 스님) 錦塘 李在福(龍峰)Lee JaeBok(YongBong Buddhist Monk)

1918 ~ 1991

한국

작가약력

  • 1918~1991. 승려·교육자·문학가.

작가 소개

이재복은 태고종 승려이자 대전·충남 현대문학의 초석을 다진 시인이고 또 대전지역 불교교육의 개척자다. 그는 약관의 나이에 출가한 후 평생 동안 부처님의 가르침을 수행하고 그 진리를 대중에게 널리 교화한 업적으로 대종사(大宗師)에 이르렀고, 대전·충남 유일의 불교종립학교인 보문학원을 설립해 보문중·고교장으로 34년간 2만여 명의 제자를 길러내고 퇴임한 뒤 태고종 종립대학인 동방불교대학 학장을 역임하다 입적한 걸출한 교육자이며 대전일보에 연작시 ‘정사록초(靜思錄抄)’를 발표하고 한국문학가협회 충남지부장을 역임하는 등 대전·충남 문학 발전에 크게 기여한 공로로 문학 부문 ‘제1회 충남문화상’을 수상한 대전·충남 현대문학의 거목이다.
용봉 대선사는 이렇게 많은 업적을 남긴 큰 스승이지만 그의 삶의 역정과 사상적 기반은 역시 불교사상이다. 그는 민족의 수난기인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생후 6개월 만에 아버지와 형들을 전염병으로 여의고 적빈의 가정에서 홀어머니의 지극한 사랑과 기대 속에 3대 독자의 삶을 살아야 했다. 약관인 15세에 계룡산 갑사로 출가해 이혼허(李混虛) 스님을 은사로 사미계를 받아 불가에 입문, 법호(法號)는 용봉(龍峰)이다. 당대 우리나라 최고의 강백(講伯)이자 평생을 청정한 불도량에서 불교학 연찬에 정진하신 석전(石顚) 박한영(朴漢永) 스님을 은사로 모시고 6년간의 공부를 마치자 은사 스님께서 지어주신 아호(雅號)가 금당(錦塘)이다.
23세에 동국대학교의 전신인 혜화전문학교 불교과에 입학해 명석한 지혜로 수석을 놓친 적이 없으며, 문장력과 필력이 뛰어나 강사 스님들의 칭송을 받았고 전 과정을 수석으로 졸업했다. 이렇게 뛰어난 재능과 남다른 원력으로 혜화전문 재학 중에도 법륜사 포교사로 활동했고, 24세엔 육당 최남선 선생의 서재인 일람각(一覽閣)에서 서사(書司)로 근무하며 1만여 권의 장서를 섭렵했다. 또한 이곳을 찾는 당대 석학들인 오세창·정인보·변영만·이광수·홍명희·김원호·고희동 등과 교유하며 그들의 가르침을 받았다.
해방 직후 충남불교청년회장으로 산간불교의 대중화·현대화라는 시대적 사명을 깊이 인식하고 마곡사에서 주지 및 승려대회를 열어 대전·충남 유일의 불교종립학교 설립을 발의하고 적극 추진해 보문중·고교를 설립 운영해 불교이념으로 교화된 수많은 인재를 양성 배출했다. 1954년 한국불교가 분규 발생으로 심각한 위기에 처했을 때 정법(正法) 수호의 기치 아래 종단 수호에 진력했으며, 56년엔 불교조계종 충남종무원장을 맡아 지역 종단을 지키는 데 주력했다. 1962년엔 불교재건 10인 위원, 비상종회 교화분과위원장으로 선임돼 불교종단 화합에 앞장서 승려의 근본을 굳건히 지켜냈다. 1966년 대전불교연수원을 설립하고 원장에 취임해 1991년까지 불교의 현대화, 대중화에 크게 기여했다.
1970년 태고종(太古宗) 창종(創宗) 이후에는 중앙종회 부의장, 종승위원장을 맡아 태고종의 종풍(宗風) 진작과 종단의 혁신에 크게 기여했으며, 중앙포교원장을 거쳐 종립 동방불교대학장의 소임을 맡아 종단의 교육 사업을 주관하는 등 종단 발전에 전심했다. 그는 중생들에게 보살승의 대승적 삶을 몸소 실천하는 참 불교인으로 살았고, 한국불교의 대중화 현대화 생활화를 몸소 실천했다.
출처/금강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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