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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주 朴龍珠Park YongJoo

1915 ~ 1988

한국

시인·춘화

작가약력

  • 1915~1988. 대구에서 활동한 시인·춘화가.

작가 소개

박용주는 큰 주먹이었다. 그는, 일제 강점기 시절 교사로 있던 무량 이상화(無量 李相和, 1901-1943) 시인이 힘을 키워 일본을 이기자며 권투부를 만들었던 교남학교 출신으로 일본 와세다 대학을 다녔다. 지나치면 넘친다 했던가. 그는 힘을 키워도 너무 많이 키워 각종 무술이 도합 9단의 실력자였는데, 우리나라 노동자들이 일본에서 뼈 빠지도록 일하고도 노임을 못 받는 것에 분개하여 해결하려 나섰다가 노동판에서 뒤를 봐주는 야쿠자와의 싸움 끝에 야쿠자를 죽음에 이르게 하고 말았다. 이로 말미암아 상해로 도피하면서 그의 인생은 뒤틀어지고 말았고, 그리하여 그는 평생을 낭인으로 살았다.
그가 깡패시인이 된 것은 운성 구상(暈城 具常, 1919-2004) 시인과의 교유 때문이었다. "문화깡패가 되라"는 구상의 추천으로 후일 「현대시학」을 통해 등단한 그는 연하의 구상에게 “오야붕”이라 고개를 숙이며 넉살을 떨기도 했다. 그는 스케치풍의 춘화도를 잘 그린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낭인으로 살았으되 늘 예술가들과 교유하며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쓴 예술가였고, 그림을 그리되 범인들의 상상을 뛰어넘는 기절초풍할 춘화도를 그려 성을 감추지 않고 드러내려한 예술가였다. 신부와 수녀가 뜨겁게 섹스 하는 그림, 스님과 비구니가 성애를 즐기는 그림, 약탕기를 머리맡에 둔 채 곤히 잠든 남편이 깰까봐 조마조마하면서 문구멍을 통해 문 밖의 외간남자와 외도를 하는 부인의 얼굴표정과 둔부 표정을 담은 그림, 지어미는 딸을 애타게 부르는데 딸은 훈풍이 이는 보리밭에서 농염한 사랑을 나누는 그림, 나신의 여인이 잠자리나 학을 타고 가는 그림, 동물과 수간하는 그림 등등 함부로 상상할 수 없는 장면의 그림들을 박용주는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아내듯 맺힘과 끊임이 없는 필치로 그려냈다. 한 시절 박용주의 춘화는 일본의 잡지에 소개되었고 이를 계기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어느 섹스 잡지에도 크게 소개되었다. 작고한 서양화가 백태호는 생전에 “박용주의 춘화는 선이 좋다.”고 평했고, 걸레스님 중광도 박용주의 춘화에 매료되어 박수를 보내곤 했다고 한다.
출처/조향래. 『향촌동 소야곡』. 시와반시사. 2007

작가의 경매 작품

제 35회 겨울경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