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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위당 장일순 無爲堂 張壹淳Jang IlSoon

1928 ~ 1994

한국

서화

작가약력

  • 한국의 서화가·사회운동가·정치가.

작가 소개

본관은 인동(仁同), 호는 청강(靑江)·무위당(无爲堂)·일속자(一粟子)이다. 1928년 9월 3일 강원도 원주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한학을 익혔고, 차강(此江) 박기정(朴基正)에게 서예를 배웠다.
1948년 서울대학교 미학과에 입학하였으나, 6·25전쟁으로 인해 학업을 중단한 뒤에는 고향인 원주로 내려가 이후 원주를 떠나지 않았다. 1953년 원주 대성학원 설립에 참여하고 초대 이사장으로 취임하였다. 교육운동에 힘쓰던 중 1960년 4·19혁명 직후 사회대중당 후보로 민의원 선거에 출마하면서 정치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5·16군사정변 직후 줄곧 주장해 오던 '중립화 평화통일론'으로 인해 구속되어 3년간 수감생활을 하였다.
출옥한 뒤에도 계속 '정치정화법'과 '사회안전법'에 묶여 군사정권의 철저한 감시를 받았다. 그럼에도 천주교 원주교구장인 지학순(池學淳), 시인 김지하(金芝河) 등과 함께 강원도 일대의 농촌·광산 지역을 돌며 농민·노동자들을 위한 교육과 협동조합운동을 주도하였다. 특히 1974년 민청학련사건이 일어났을 때는 지학순 주교가 유신헌법은 무효라는 양심선언을 하고 수사기관에 출두하도록 권유하였다.
1970년대 원주 지역이 반독재 투쟁의 주요 거점이 되었던 것도 바로 장일순과 지학순이 있었기 때문인데, 장일순은 정치활동의 전면에는 결코 나서는 법이 없이 항상 뒤에서 반독재 투쟁을 지원하면서 사상적 지주 역할을 하였다. 1980년대에는 원주의 '한살림운동'을 주도하면서 호를 '한 알의 작은 좁쌀'이라는 뜻의 일속자로 바꾸고 산업문명으로 파괴된 자연의 복구를 주장하는 생명사상(운동)을 펼쳤다.
유학·노장사상에도 조예가 깊었고, 특히 최시형(崔時亨)의 사상과 세계관에 많은 영향을 받아 일명 '걷는 동학(東學)'으로 통하였다. 서예에도 뛰어났는데, 1988년 한살림운동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연 개인전을 제외하고는 돈을 받고 작품을 파는 법이 없었다. 서화 가운데서도 특히 난초를 잘 그렸고, 만년에는 난초 그림에 사람의 얼굴을 담아 내는 '얼굴 난초'로 유명하였다.
출처/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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