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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친왕(우석) 이재면 興親王(又石) 李載冕Lee JaeMyeon

1845 ~ 1912

조선·근대

작가약력

  • 1845(헌종 11)∼1912. 조선 말기의 문신. 대원군 장남.

작가 소개

자는 무경(武卿), 호는 우석(又石). 뒤에 이희(李熹)로 개명하였다. 흥선대원군과 여흥민씨(驪興閔氏) 사이의 장남으로, 고종의 형이며, 영선군 준용(永宣君埈鎔)의 아버지이다.
1863년(철종 14) 사용(司勇)의 직을 맡았다가 이듬해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규장각시교·예문관검열·승정원주서 등을 거쳐 1865년(고종 2) 동부승지·대사성·이조참의·부제학 등을 지냈다. 1866년 도승지, 이듬해에는 직제학, 곧 이어 이조참판으로 승진하였다.
1878년 지경연사(知經筵事)에 올랐으며, 이듬해 종1품에 특서되었다. 1880년 병조판서, 이듬해에는 금위대장, 이어서 판돈녕부사로 사대교린당상(事大交隣堂上)에 올라 이조판서·예조판서를 지냈다. 1882년 6월 임오군란 때 무위대장(武衛大將)으로 사태수습에 힘썼고, 호조판서·선혜청당상(宣惠廳堂上)·지삼군부사(知三軍府事)·훈련대장을 겸하였다.
그 해 12월, 이미 7월에 청나라에 호송되어 톈진(天津)보정부(保定府)에서 감금생활을 하던 아버지 흥선대원군을 방문하였다. 이듬해 3월에 일시 귀국했다가 5월에 다시 청나라에 가서 흥선대원군을 봉양하였다. 1885년 4월 귀국했다가 아버지를 잊지 못해 세번째로 청나라에 가서 8월 흥선대원군이 환국할 때 배종하였다. 그 뒤 약 10년간 운현궁에서 칩거하였다.
1894년 6월 흥선대원군이 집정하자 통리기무아문(統理機務衙門)의 동문사당상경리사(同文司堂上經理事)가 되었다가 제1차 김홍집내각(金弘集內閣) 때 보국숭록대부로서 궁내부대신이 되었다.
1900년완흥군(完興君)에 책봉된 뒤 1907년 대훈이화장(大勳李花章)·서성장(瑞星章)을 받았고, 10월 육군부장(陸軍副將)이 되었다. 11월 보빙대사(報聘大使)로 일본에 다녀왔고, 1909년 대훈금척대수장(大勳金尺大綬章)을 받았으며, 1910년흥친왕(興親王)에 봉해졌다.
1910년 8월 22일 어전회의에 황족대표로 참석하여 한일합병조약 체결에 동의하였다. 이듬해 1911년 1월 13일 일본정부로부터 은사공채 83만원을 수령하였으며, 1912년 8월 1일 일본정부로부터 한국병합기념장을 받았다.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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