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상세 설명
해프닝이 예술언어로 편입된 지 100여년의 시간이 흘렀다. 논란이 아방가르드의 조건이라면, 한국사회에 내재한 보수성은 새로움을 양산하는 묘한 동력이 된다. 들여다보듯 이어가는 이야기들 속에서 관람자들은 아티스트의 인생스토리를 엿보는 심리(觀淫症, voyeurism=훔쳐보기)를 통해 ‘텅 빈 쾌락’을 즐긴다. 그 안에서 소비되는 대표적인 아티스트가 ‘솔비×권지안’이다. 아트테이너라는 이유로 어떤 퍼포먼스와 매체를 시도해도 예술성 앞에 ‘화면 어딘가에 나오는 이슈메이커’라는 기제로 언급되기 때문이다. 작가는 익명성 뒤에 숨은 다수에게 확인되지 않은 평가를 받을 때마다, 감시당하지 않는 셸터(Shelter=작업실)에 몸과 마음을 의탁한다. 그렇게 작업에 몰입하면 기계적으로 작동하던 ‘관음의 메커니즘’은 ‘새로운 예술을 위한 동력’이 되어 치유를 위한 대상들을 탄생시킨다. 2020년 12월 제프 쿤스의 케이크 를 표절했다는 이유로 논란의 중심이 된지 1년, 골칫덩어리였던 케이크는 아이러니하게도 작가의 새로운 시리즈(Just a Cake)를 여는 희망의 기폭제(Piece of Hope)로 기능 중이다.
케이크 덩어리와의 만남, 논란이 희망이 되어
(2021)시리즈는 스튜디오 1층의 베이커리 까페의 제빵사들과 조카와 했던 클레이 아트놀이에서 영감을 얻은 비정형 더미의 케이크들에 대한 사회적 이슈로부터 시작되었다. 크리스마스를 위한 고아원 아이들의 후원을 위해 제작된 케이크 더미들은 SNS에 공개되자마자 정체불명의 유령 계정들로 인해 ‘제프쿤스 표절' 악플 공격과 확인 안 된 기사들 속에서 표절로 낙인을 찍혔고, 제프쿤스의 거대한 알루미늄의 조각품과 권지안의 먹는 케이크라는 이중 해석 속에서 작가도 의도도 ‘상처덩어리’가 되었다. 케이크가 가진 ‘축하와 감사’의 기능은 상처로 도배된 채, 사이버불링(Cyber-bullying; 보이지 않는 폭력)과 옐로우 저널리즘에 대한 작가해석과 만나 어딘가 있을 또 다른 피해자들을 향한 희망의 메시지로 전환되었다. 그렇게 조용히 보낸 올해 초의 첫 개인전(2021년 3월3일)은 회화와 조각 작품 30여점으로 치환되어 케이크의 질감과 부조로 형상화된 그림 위를 희망의 불씨를 담은 초 작업으로 재탄생했다. 작가는 “상처받은 케이크는 나의 과거와 오늘을 보여주지만, 그 안에 밝힌 희망의 초는 힘겨운 세상과 만난 현대인을 위한 희망의 빛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그렇게 제작된 케이크는 음악과 만난 로 확장되어 현대미술의 대중적 해석에 새로운 모티브를 제공해주었다. 스피커 기능이 있는 캔버스 위에 순백의 케이크 입체 부조가 완성되고, 곡의 전면에 흐르는 신곡 ‘Angel(앤젤)’이 삽입되어 삶이 예술이 되는 마법과 만나는 실험이었다. 대중들로 인해 힘과 상처를 동시에 받는 권지안이라는 작가에게 ‘공유’의 대상인 음악과 ‘소유’의 대상인 미술의 결합은 대중예술과 순수예술의 경계를 허무는 시도였다. 이에 화답하듯 이 작업은 경매최고가에 낙찰되었고, 낙찰자에게 ‘Angel’ 음악공개에 대한 결정권(유통 동의권)까지 넘겨준 독특한 사례를 남겨주었다. 한 사람을 위한 음악, 모두를 위한 미술, 어쩌면 이 정반합(正反合)을 추구해 ‘통합예술’의 길로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이 권지안이 추구하려는 예술의 나침반이 아닐까.
장르 권지안의 ‘Conceptual-Pop(개념적 팝)’
수많은 이슈와 만나온 작가는 세상과 자신이 느끼는 편견과 혼란, 그 자체를 예술의 해프닝으로 삼는다. 이를 다원예술(회화·조각·설치·행위·미디어 등)로 풀어온 작가는 2006년부터 솔비(Solbi)라는 예명으로 활동한 여성 K-Pop가수라는 정체성 또한 작품에 녹여낸다. 아카데믹한 화단에서의 비난도 10년간의 꾸준한 작품 활동 속에서, 의심과 시도 사이에서 긍정적인 평가로 바꿔가는 중이다. 여러 아트테이너들이 ‘미술’에 도전하며 엇갈린 평가를 받아왔지만, 권지안 만큼 논란의 대상이 되어 뭇매를 맞은 경우도 많지 않다. 이슈에 대한 화답을 작품으로 보여준 탓에 삶의 모든 순간(경험)들은 작업의 원인이 될 수밖에 없었다. 작가는 상처와 극복, 도전과 인내의 순간들을 ‘미술의 순기능=사랑과 위로’에 담아 “나의 경험을 밟고 희망어린 세상과 만나세요!”라고 읊조린다. 2012년 첫 개인전으로 데뷔한 작가는 현대인들의 욕망과 외모지상주의를 향한 현대인들의 이중변주에 주목했고, 2015년 이후 음악을 시각예술로 변환시키는 ‘셀프-콜라보레이션’ 작업들을 진행해 왔다. 음악과 미술을 결합한 첫 시도 (2015), 솔비와 권지안이라는 내·외적 자아의 만남 92016), SNS(사회관계망)의 어제와 오늘을 담은 ‘SNS WORLD 직지 코리아 페스티벌’ 참여(2017), 객관적 자아로의 확장이자 여성의 상처와 인권을 담은 (2017), 사회계층(Class)의 문화자본에 대한 철학을 담은 (2018), 파리 현지예술인들과 통합예술을 선보인 사랑의 질문 (2019) 등을 선보여 왔다. 권지안의 작업은 팝아트의 대중성과 감성본위의 추상을 결합한 ‘개념적 팝’을 지향한다. 미디어가 만든 스타성의 허상 속에서 ‘텅빈 자아’를 경험한 작가는 대중들과 만나는 지점(이슈까지 포함)을 ‘책임 있는 표현’으로 옮겨놓는 중이다. 미술의 높은 문턱이 대중문화에 익숙한 ‘솔비×권지안/권지안×솔비’를 소비하는 가운데 생명력을 얻는다면, 누구나 예술이라는 치유의 문을 두드리지 않을까하는 희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미 아카데믹한 전공자들만의 영역과 그들만의 고상한 취미라는 시각을 깨는 ‘아트테이너의 아방가르드’로 읽히고 있다.
-안현정 (미술평론가, 예술철학박사)
내 작업실은 1층은 제빵실 2층은 카페, 모퉁이 언저리에 작업 공간이 있다. 그곳을 난 '빌라빌라콜라'라고 이름을 짓고, 다양한 실험을 하는 작업 공간으로 사용하기도 하고 때로는 전시하는 갤러리로 변하기도 한다. 베이커리 카페 안에 작업실이 있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미술 재료와 비슷한 제빵 재료에 호기심이 생겼다. 진열장에 놓여있는 획일화된 케이크를 보면 화려한 군중 속에 고독한 팝 아티스트들의 모습처럼 느껴졌다. 이런 케이크라는 소재에 내 심미안(審美眼)을 넣어 미술적 언어인 평면 회화와 조각으로 해체했다. 2020년 코로나19 시대는 우리가 누려왔던 모든 기능을 바꿔 놓았다. 기념일을 축하하는 파티는 물론 타인과의 단절은 케이크의 순기능을 상실해 버렸다. 무의미하고 가식적인 케이크가 아닌 진심으로 나를 축하하는 케이크는 무엇일까. 청키(chunky)하고 비정형적인 모습은 정형적인 아름다움의 질서를 파괴하고, 케이크 시트는 인간의 나체를 나타내며, 다양한 컬러의 크림은 화려하게 포장하며 살아가는 인간의 다중성을 담고 있고, 케이크 위에 꽂힌 초는 불안정한 우리 사회와 미래에 대한 의식(consciousness)을 드러내며, 크림의 질감은 만지고 문지르고 싶은 인간 본연의 섹슈얼리티를 느끼게 하며, 일부를 파먹은 모습은 상처받고 소비되고 버려지는 환영 받지 못한 코로나19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초상처럼 비춰졌다. 케이크는 오랜 전통과 풍습이 재료와 변화된 모형을 통해 시대상을 담고 있다. 현대 시대의 케이크는 화려해졌지만 개성을 상실하고 있고, 다양해졌지만 기능을 잃어가고 있다. 우린 무엇을 기념하기 위해 케이크 위에 꽂힌 초를 켜고 끄며 소원을 빌까? 케이크는 이 시대의 정말 축하의 상징일까..?
- 작가 노트
작가 소개
해프닝이 예술언어로 편입된 지 100여년의 시간이 흘렀다. 논란이 아방가르드의 조건이라면, 한국사회에 내재한 보수성은 새로움을 양산하는 묘한 동력이 된다. 들여다보듯 이어가는 이야기들 속에서 관람자들은 아티스트의 인생스토리를 엿보는 심리(觀淫症, voyeurism=훔쳐보기)를 통해 ‘텅 빈 쾌락’을 즐긴다. 그 안에서 소비되는 대표적인 아티스트가 ‘솔비×권지안’이다. 아트테이너라는 이유로 어떤 퍼포먼스와 매체를 시도해도 예술성 앞에 ‘화면 어딘가에 나오는 이슈메이커’라는 기제로 언급되기 때문이다. 작가는 익명성 뒤에 숨은 다수에게 확인되지 않은 평가를 받을 때마다, 감시당하지 않는 셸터(Shelter=작업실)에 몸과 마음을 의탁한다. 그렇게 작업에 몰입하면 기계적으로 작동하던 ‘관음의 메커니즘’은 ‘새로운 예술을 위한 동력’이 되어 치유를 위한 대상들을 탄생시킨다. 2020년 12월 제프 쿤스의 케이크 를 표절했다는 이유로 논란의 중심이 된지 1년, 골칫덩어리였던 케이크는 아이러니하게도 작가의 새로운 시리즈(Just a Cake)를 여는 희망의 기폭제(Piece of Hope)로 기능 중이다.
[Just a Cake - Humming for LOVE / 안현정 (미술평론가, 예술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