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全和凰

Chun HuaHuan

  • 미륵보살

彌勒菩薩

Thinking Buddhist Image, Sitting Cross-Legged

캔버스에 유채
Oil on Canvas

23×16㎝

우측 하단에 全

액자

추정가

  • KRW  400,000 ~ 1,200,000
  • USD   310 ~ 910
  • JPY     44,000 ~ 131,000

낙찰가

KRW 500,000

작가 소개

본명은 전봉제(全鳳濟). 본관은 나주(羅州). 평안남도 안주 출생. 평안북도 영변과 평양에서 중학교를 다니다가 중퇴하고 수채화를 그려 1931년조선미술전람회〔약칭 선전(鮮展)〕에 입선하였다.
1936년 중국으로 건너가 봉천[奉天: 지금의 심양(瀋陽)]의 일본 절 잇토엔(一燈園)에서 불자(佛子) 생활을 하였다. 그러나 1938년 일본 교토(京都)의 잇토엔으로 가서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전화광(全和光)으로 이름을 바꾸고 여러 전람회에 출품하여 수상하였다.
1945년 광복 후에도 계속 교토에서 화가 활동을 하며 독실한 불심(佛心)으로 「관음상 입혼식(入魂式)」(1946년)·「절이 보이는 풍경」(1949년) 등을 그렸다.
1950년 6·25 발발과 동족상잔의 비극을 일본에서 가슴 아프게 보게 된 심정을 「어느 날의 꿈-학살-」·「갓난이의 매장」·「재회-갓난이의 부활-」·「군상」 등의 침통한 주제로 그림을 그려 주목을 끌었다. 그 뒤에도 「피난민 행렬」·「전쟁 고아」 등 비통한 분위기의 그림을 계속 그렸다.
1960년 무렵부터는 깊은 불심의 마음과 명상과 평화를 기도한 청정하고 고결한 분위기가 담긴 「백제관음」(1964년, 1971년 외 연작)·「사천왕-현세를 노려보다-」(1967년)·「보살과 태양」(1967년)·「미륵보살」(1970년)·「불상과 자화상」(1974년)·「관음만다라」(1975년) 등 고요한 형상과 신비감의 색상 및 경건한 공간 분위기를 끊임없이 추구하였다.
표현주의 수법으로 종교적 철학관을 내재시킨 이 불상 주제 연작 외에, 문학적 시정(詩情)을 느끼게 하는 「잡초 속의 꽃」(1966년)과 주로 모란을 그린 「꽃과 태양」의 연작(1970년대 후 지속)도 내면적으로 평화를 기도한 그림이었다.
전화황(全和凰)으로 이름을 두 번째 바꾸어 쓰기 시작한 것은 1958년부터였다. 그림 생활과 함께 꾸준히 쓴 문학 소설도 높은 평가를 받아 1958년에는 『갓난이의 매장』이 출판되었다. 1976년에는 오사카경제신보사에서 『전화황소설집』이 간행되었다.
일본으로 떠난 지 41년만인 1979년 한국과 서울 방문이 처음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북한 계열의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朝總聯)〕에 가담하였다. 1982년 서울의 한국문화예술진흥원 미술회관에서 ‘전화황 화업 50년전’이 대규모로 열리면서 크게 환영받았다. 그 뒤에도 교토에 있는 자신의 미술관과 화실에서 제작 생활을 지속하였다.
1993년 재일 동포 수집가 하정웅(河正雄)이 기증한, 그의 대표작을 포함한 92점이 광주시립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첼리스트 전봉초(全鳳楚)가 친동생이다.
전화황은 자신의 종교적 신앙의 세계를 수많은 불화(佛畫) 작품들을 통하여 형상화 하였다. 이러한 소재 선택 방식과 신앙적 고백이 깊이 침잠되어 있는 화면 분위기는 한국과 그가 활동하고 있는 일본, 즉 양국의 미술 세계에서 높이 평가 받아왔다. 비록 그는 국내 화단과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평생을 보냈으나, 인류 평등과 자애를 염원하는 사유성 깊은 화면은 피상적인 현상에만 집착하는 현대의 미술계에 새로운 메시지와 탈출구를 제시한 것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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