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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芝溶

Jeong JiYong

  • 시집 백록담 초판본

詩集 白鹿潭 初版本

Collection of Poems `Baengnokdam Crater Lake' First Edition


19×13㎝

(쇼와 16년(1941))

추정가

  • KRW  9,000,000 ~ 27,000,000
  • USD   6,770 ~ 20,310
  • JPY     979,000 ~ 2,935,000

낙찰가

KRW 10,000,000

작품 상세 설명

한국 현대시의 아버지로 불리는 정지용 시인의 시집(‘백록담’)의 1941년(소화 16년 9월 13일 인쇠, 9월 15일 발행된)된 초판본이다. 1930년대 모더니즘과 이미지즘의 대표 시인인 정지용은 《정지용 시집》 이후 1941년에 두 번째 시집인 《백록담》을 출간했다. 1941년 문장사에서 처음 출간된 《백록담》은 1946년 백양사에서 재판을 찍었고, 1950년 동명출판사에서 3판을 찍을 정도로 인기 있던 시집이다.

정지용의 두 번째 시집인 《백록담》은 표제시인 〈백록담〉을 포함하여 자연을 노래한 33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절제된 감정과 잘 다듬어진 언어의 아름다움이 절정에 이르렀다는 평을 받는 시집으로, 총5부로 구성되어 있다. 시집 《백록담》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은 〈백록담〉이라고 할 수 있다. 김우창은 ‘감각과 언어를 거의 가톨릭적 금욕주의의 엄격함으로 단련하여’ ‘감각의 단련을 무욕(無慾)의 철학으로 발전시켰다’고 〈백록담〉을 평가했다. ‘한라산소묘’라는 부제가 붙은 이 시는 원래 1939년 《문장》 3호에 처음 발표됐다.

정지용은 특히 《백록담》의 작품들에서 산문 형식으로 시를 구성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율조와 심상을 구현했다. 정지용의 시세계는 ‘바다’와 ‘산’이라는 두 단계로 구분하는데, 첫 번째 시집인 《정지용 시집》이 도시와 바다를 배경으로 한다면 두 번째 시집인 《백록담》은 ‘산’을 중심으로 자연과 하나가 되어 느낀 심상을 구체적이고 객관적으로 그려냈다. 정지용은 모국어를 활용하여 우리 고유의 목소리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절제된 언어로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살려내며 한국 문학의 이미지즘과 모더니즘 계열 시의 새로운 지평을 만든 정지용은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작가 소개

본관은 연일(延日). 충청북도 옥천(沃川) 출신. 아명(兒名)은 태몽에서 유래된 지용(池龍)이고 세례명은 프란시스코[方濟角]이다. 가끔 ‘지용’으로 작품을 발표하고 있을 뿐이며, 여타의 아호(雅號)나 필명은 없다.
고향에서 초등 과정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와 휘문고등보통학교(徽文高等普通學校)에서 중등 과정을 이수했다. 그리고 일본으로 건너가 교토[京都]에 있는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學]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귀국 후 곧바로 모교인 휘문고등보통학교 교사로 근무하다가 8·15광복과 함께 이화여자대학교 문학부 교수로 옮겨 문학 강의와 라틴어를 강의하는 한편, 천주교 재단에서 창간한 경향신문사의 주간을 역임하기도 했다. 그리고 무슨 까닭인지 확인된 바 아니나, 이화여대 교수직과 경향신문사 주간직은 물론, 기타의 공직에서 물러나 녹번리(현재 은평구 녹번동)의 초당에서 은거하다가 6·25 때 납북된 뒤 행적이 묘연한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런데 최근 평양에서 발간된 「통일신보」(1993.4.24., 5.1., 5.7.)에서 가족과 지인들의 증언을 인용해 정지용이 1950년 9월경 경기도 동두천 부근에서 미군 폭격에 의해 사망했다는 사실을 보도하기도 했다. 정지용의 행적에 대한 갖가지 추측과 오해로 유작의 간행이나 논의조차 금기되다가 1988년도 납·월북작가의 작품에 대한 해금 조치로 작품집의 출판과 문학사적 논의가 가능하게 되었다.
정지용은 1930년대에 이미 한국 현대시의 새로운 시대를 개척한 선구자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당시의 시단(詩壇)을 대표했던 시인이었다. 김기림과 같은 사람은 “한국의 현대시가 지용에서 비롯되었다”고 평하기도 했다.
그의 시는 크게 세 시기로 특징이 구분되어 나타난다. 첫 번째 시기는 1926년부터 1933년까지의 기간으로, 이 시기에 그는 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아 이미지를 중시하면서도 향토적 정서를 형상화한 순수 서정시의 가능성을 개척하였다. 특히 그는 우리말을 아름답게 가다듬은 절제된 표현을 사용하여 다른 시인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다. 지금까지도 널리 사랑을 받고 있는 ‘향수’(조선지광, 1927)가 이 시기의 대표작이다. 두 번째 시기는 그가 ≪가톨릭청년≫의 편집고문으로 활동했던 1933년부터 1935년까지이다. 이 시기에 그는 가톨릭 신앙에 바탕을 둔 여러 편의 종교적인 시들을 발표하였다. ‘그의 반’, ‘불사조’, ‘다른 하늘’ 등이 이 시기에 발표된 작품들이다. 세 번째 시기는 1936년 이후로, 이 시기에 그는 전통적인 미학에 바탕을 둔 자연시들을 발표하였다. ‘장수산’, ‘백록담’ 등이 이 시기를 대표하는 작품들로, 자연을 정교한 언어로 표현하여 한 폭의 산수화를 보는 듯한 인상을 준다고 해서 산수시(山水詩)라고 불리기도 한다.
정지용은 참신한 이미지와 절제된 시어로 한국 현대시의 성숙에 결정적인 기틀을 마련한 시인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분단 이후 오랜 기간 동안 그의 시들은 다른 납북 문인들과 마찬가지로 공개적으로 언급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다. 그러다 수많은 문인들의 청원으로 1988년 3월 해금(解禁)되어 대중에게 다시 알려지기 시작했고, 1989년에는 ‘지용 시문학상’이 제정되어 박두진이 1회 수상자로 선정된 뒤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1995년에는 그의 대표적인 작품인 ‘향수’가 가요로 만들어져 발표되기도 했으며, 2003년 5월에는 이달의 문화인물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시집으로 ≪정지용 시집(鄭芝溶詩集)≫(시문학사, 1935), ≪백록담(白鹿潭)≫(문장사, 1941), ≪지용시선(芝溶詩選)≫(을유문화사, 1946)이 있으며, 산문집으로 ≪문학독본(文學讀本)≫(박문서관, 1948)과 ≪산문(散文)≫(동지사, 1949)이 전해진다. 그리고 이들 단행본에 실리지 않은 시와 산문들도 모아서 1988년 민음사에서 ≪정지용 전집(鄭芝溶全集)≫이 시와 산문으로 나뉘어 2권으로 발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