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소개
1919년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났으며, 1938년 일본 가와바타화학교(川端畵學校) 양화부에 입학하였다. 1942년에는 일본 분카학원(文化學院) 미술과를 수료하였다. 1947년 월남하였으며, 아들 수영과 수인을 두었다.
1947년 황해도에 해주미술학교를 설립하였다. 같은해 제1차 국가미술전람회에 「간척지」를 출품하였다. 그러나 작품 속 인민이 노예처럼 보인다는 이유로 작품이 철수되었으며, 이 사건으로 심사위원 선우담(鮮于澹, 1904∼1984)이 해임 당하였다. 박성환은 1947년 월남하였으며, 육군본부 정경실에 소속되어 좌익미술인을 우익으로 전환시키는 일을 하였다. 1948년 민족회화연구소를 개설하였으며, 1950년에는 50년 미술협회 추천회원이 되었다. 1951년에는 국방부 종군화가단 단원이 되었다. 대한미술협회 중앙위원 및 전국예총 중앙위원으로 활동하였으며, 1956년에는 서라벌예술대학 창설교수로 취임하였다. 1959년부터 대한민국미술대전 추천작가, 초대작가, 심사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1967년에는 구상전 창립회원으로 활동하였다. 1979년에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탄생 60주년을 기념하여 회고전이 개최되었다.
박성환의 작품은 황소나 한국인 등 향토색 짙은 소재를 주로 하여 다채로운 필치로 묘사되고 있다. 작가가 좋아하는 주제는 농악, 군무, 풍경, 항아리를 든 여인 등인데, 그는 이러한 주제로 한국의 목가적인 풍경을 추구하였다. 박성환의 작품세계는 색채와 형태의 단순화로서 어느 쪽이냐 하면 주관성이 강한 표현주의적인 경향의 작품을 제작하고 있다. 그는 화면에서 색채의 대비, 농도를 바탕으로 하는 이른바 톤(Tone)을 무엇보다도 중요시한다. 또 기술상에서는 화면의 층(層)을 중요시해서 마치 ‘루오’나 ‘박수근’의 작품과 같이 중복된 화면을 형성한다. 그러한 기교를 쓰면서도 그의 작품이 획일적인 경지를 벗어나고 있는 것은 그의 내부에서부터 일어나고 있는 정신의 다변화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1960년대 후반부터는 농악을 주제로 그린 그림이 주를 이루는데, 해체된 형태와 자유로운 구성 등으로 인물의 운동성이 강조되어 있다.
1936년 조선일보사가 주최하는 제1회 전국학생미술전에서 특별상을 수상하였으며, 1937년 제16회 조선미술전람회에 「계류(溪流)」로 입선하였다. 같은 해 선만(鮮滿)중등미전에서 특별상을 수상하였다. 1941년과 1942년 이과전에 입선하였으며, 1943년에는 초대작가로 이과전에 참여하였다. 1946년 전국도 단위로 개별 개최된 제1회 해방기념 종합전람회의 평양전람회에서 1등상을 수상하였다. 1954년에는 국방부와 미술협회가 주최하는 6.25기념미술전에서 「6월 27일」로 국방장관상을 수상하였으며, 제3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 입상하였다. 1956년 제5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 입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