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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층 석탑

三層 石塔

Three Storied Stone Pagoda


240×110×110㎝

(고려시대)

추정가

  • KRW  50,000,000 ~ 100,000,000
  • USD   37,150 ~ 74,300
  • JPY     5,490,000 ~ 10,980,000

작품 상세 설명

불교의 교세는 고려시대에 와서 절정에 달하였다. 따라서 불교적인 조영(造營) 작업도 거의 고려 일대를 통하여 국가적 혹은 개인적으로 되었으며, 그 결과 오늘날 많은 석탑과 유례가 남아 있다. 고려시대의 특징은 우선 석탑건립 이전 시대에 비하여 전국적으로 확산, 분포된 점이다. 다만 수적으로는 왕도(王都)인 개경 부근이 우세한 면이 없지 않다. 물론 이러한 분포상의 변화는 시대상의 변혁에 따른 것이기도 하다. 즉, 왕실불교적 위치에서 출발한 우리나라 불교가 세월이 지남에 따라 대중화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주목되는 점은 고려시대의 조탑활동에 순수한 지방세력 내지는 민중이 대거 참여하였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고려시대 석탑을 전국적으로 분포시키는 데 보다 더 영향력을 끼쳤던 것으로 짐작된다. 이러한 사실들은 고려석탑의 양식상에 다양한 변화를 초래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즉, 전대의 왕도 중심의 일률적인 탑파 건립에서 벗어나 각 지방의 토착세력이 건탑(建塔)에 관여하였을 때 일률적인 규범보다는 각기 제 나름대로의 특징이 반영되어, 곧 다양성 있는 건탑의 양상을 보이게 되었을 것이다. 실제로 이 시대의 석탑은 그 조형양식상에 다양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 모두 신라식을 계승하고는 있으나 옥개석의 낙수면이 급경사를 이루고 추녀가 직선에서 곡선으로 변하였다든가 단층기단이 많아지고 상층기단갑석의 부연이 형식화되거나 생략되는 등 부분적으로 약화되고 둔중해진 고려석탑 특유의 작풍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고려사회의 새로운 성격이 두드러지기 시작하는 10세기 후반부터는 양식상 전대에 비하여 현저한 변화를 보인다. 그러한 고려석탑의 새로운 양상으로서 지방적인 특색이 현저해진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신라시대에는 석탑에서 지방적 특색을 별로 찾아볼 수 없다. 설령 신라의 중심이었던 경주를 벗어난 지방에 석탑이 건립되었다 하더라도 중앙인 경주지역의 양식과 별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고려시대에 이르러서는 각 지방에 따라 각기 특색 있는 양식을 보이고 있다. 예를 들어 신라의 고토인 경상도지방에서는 신라시대 석탑의 계통을 충실하게 계승한 데 비하여 백제의 고토인 충청남도와 전북특별자치도 지역에서는 백제시대 석탑의 양식을 따르고 있는 예가 많다. 무량사 오층석탑(보물, 1963년 지정) · 부여 장하리 삼층석탑(보물, 1963년 지정) · 서천 성북리 오층석탑(보물, 1963년 지정) · 1971년 충청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된 계룡산 청량사지 쌍탑 등과 전북특별자치도의 익산왕궁리오층석탑 · 정읍 은선리 삼층석탑(보물, 1963년 지정) · 귀신사삼층석탑 · 죽산리삼층석탑 등 백제계의 석탑은 특히 옥개석의 구성에서 백제양식을 본받고 있다. 즉 옥개석 양식이 모두 판석형의 낙수면석이고, 대개의 경우 그 밑의 받침부가 별석으로 조성된 목조가구의 일면을 보이고 있는 점 등이 미륵사지석탑과 부여정림사지오층석탑의 각 부를 모방하고 있어 ‘백제계의 고려석탑’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백제 고토에서만 볼 수 있는 백제계 고려시대 석탑의 건립 현상은 고려의 불교가 전대인 신라시대의 중앙집중에서 벗어나 좀 더 지방에까지 파급되고 한층 토착화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본 작품은 삼층석탑(三層石塔)으로, 삼층석탑은 기단(基壇)과 상륜(相輪) 사이에 있는 탑의 몸이 삼층으로 되어 있는 석탑이다. 보물 297호 김천 청암사 수도암 동서삼층석탑과 유사한 면모를 많이 보여준다. 2단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렸다. 1층 몸돌에 비해 2층 몸돌이 크게 줄었으나 3층 몸돌은 2층과 비슷하다. 1층 몸돌의 각 모서리에는 기둥만 새겨져 있다. 지붕돌(屋蓋石)은 동탑보다 얇고 넓으며 밑받침은 5단이다. 전체적으로 신라식을 계승하고는 있으나 옥개석의 낙수면이 급경사를 이루고, 상층기단갑석의 부연이 형식화되거나 생략되는 등 부분적으로 약화되고 둔중해진 고려석탑 특유의 작풍을 보이고 있다.